기아(起亞)사태로 협력업체 연쇄부도와 금융시장혼란, 대외신용도추락 등 엄청난 파장이 일고 있는데도 수습에 구심점이 없다. 여신규모나 관련업체수 대외거래 등에 있어서 기아그룹 좌초가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과 후유증은 한보부도 때보다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와 금융단은 책임회피와 제몫챙기기에 급급하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 금융기관과 함께 기아후유증을 추스르는 위기관리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기아가 부도위기에 몰려 부도방지협약 대상으로 지정된 후 재정경제원측은 『개별기업 경영난에 정부가 할 일이 없다. 채권은행단이 처리할 문제』라며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제2금융권의 대출중단과 여신 조기회수에 불을 댕겨 한보사태 이후 다시 극심한 자금경색을 초래하면서 재계가 부도 공포에 휩싸여 있다. 1만7천6백여 기아 연관업체의 불안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상황은 비상인데 당국은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있으니 불안이 증폭되는 건 당연하다.
한국은행이 긴급자금을 방출하고 통상산업부는 브라질 자동차수출쿼터를 기아에 우선 배정했으며 해외공관은 외국 금융기관을 안심시키는 데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사안에 비추어 산발적이고 미온적이다. 금융불안을 해소하고 기아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려면 경제부총리가 구심점이 되어 관련부처 및 금융기관과 협력,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정도(正道)일 것이다.
동남아 외환위기가 확산되는 시점에 터진 기아사태가 자칫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대외신용도 하락에 따른 해외자금차입 애로와 금리상승, 국제핫머니의 외환시장 교란 가능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기아사태의 분명한 수습방향을 제시하고 일관성있는 경제정책 의지를 보여야 해외금융기관이나 거래선의 동요를 막을 수 있다. 정책대응에 실기(失機)하면 대가는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