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앤컴퍼니가 뽑은 국내 단 2개 ‘글로벌 장수 성장기업’ 아모레퍼시픽-한국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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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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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보다 반복성의 힘

“변화의 시대에 복잡성은 기업의 성장을 위협하는 암살자가 될 수 있다. 많이 먹지만 모두 토해 버리는 거식증에 걸린 것처럼 핵심사업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의 크리스 주크와 제임스 앨런 파트너는 10여 년간 장수기업의 비결을 연구했다. 그 결과는 5월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출판사에서 ‘반복성(Repeatability)’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 여기엔 장수하면서도 꾸준히 성장하는 글로벌 기업 50곳이 소개됐다. 애플, 이케아, 나이키, P&G 등 세계적인 기업과 함께 한국 기업으로는 아모레퍼시픽과 한국타이어 2곳이 꼽혔다.

저자들은 50개 기업을 가리켜 성공을 반복할 능력을 가진 ‘위대한 모델’이라며 공통점을 분석했다. 이들이 뽑아낸 ‘성공 원칙’은 △핵심사업의 차별화 △타협하지 않는 가치 △환경 변화를 스스로 감지해 반응 등 3가지다. 그러면서 “위기와 변화의 시기에 전문가들은 기업들에 창업 수준의 혁신을 주문할 때가 많지만 핵심에 집중하는 단순화가 가장 승산이 높다”고 강조했다.

○ 아모레퍼시픽 “선두 업체가 아파할 ‘송곳’ 하나면 된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이 화장품 개발을 위해 한방 원료에서 성분을 추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외부 연구기관과 활발하게 협력해 연구개발(R&D) 역량을 높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이 화장품 개발을 위해 한방 원료에서 성분을 추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외부 연구기관과 활발하게 협력해 연구개발(R&D) 역량을 높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아모레퍼시픽은 사업 다각화가 유행처럼 번지던 1980년대까지 금융, 보험,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수입 화장품이 밀려오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되자 경영진은 ‘뷰티’라는 핵심사업 하나만 남기기로 결정했다. 1991년부터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해 1997년까지 25개에 이르던 계열사 대부분을 정리했다. 덕분에 외환위기에도 타격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해 국내 최초로 주름 개선 기능성 성분인 레티놀을 함유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늘었다.

1997년은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있게 해준 브랜드인 ‘설화수’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강학희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장(부사장)은 “1990년대 초중반은 외국회사들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다 죽어나갔다. 거대 외국회사들과 싸워서 이길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외국회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은 한국적인 재료를 이용한 한방화장품이라고 판단했다. 연구개발(R&D) 전략의 핵심은 외부 전문가들의 기술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경희대 한의대와 공동 개발해 탄생시킨 설화수는 이후 15년간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강 부사장은 “세계시장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1, 2등 회사들이 아파할 만한 ‘송곳’ 하나를 만들면 된다. 우리에겐 설화수가 송곳이다”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의 R&D 비용은 지난해 734억 원. 국내 웬만한 제약사보다도 많은 R&D 비용을 쏟아붓는 셈이다.

○ 한국타이어 “우리는 타이어만 만든다”

한국타이어 충남 금산공장에서 직원이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최근 글로벌 시장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공장을 확충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제공
한국타이어 충남 금산공장에서 직원이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최근 글로벌 시장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공장을 확충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제공
한국타이어는 71년간 타이어만 만들어 온 ‘한 우물 경영’의 대표 사례다. 최근 20여 년 사이 국내 기업들에 가장 큰 위기로 꼽히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타이어엔 오히려 기회였다.

외환위기 때는 부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1997년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충남 금산공장을 지었고 1999년에는 중국에도 공장을 지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찾기 시작하면서 세계시장에서 한국타이어가 주목받았다. “브랜드 인지도는 뒤져도 품질은 뒤질 수 없다”며 품질 향상에 투자한 것이 뒤늦게 빛을 본 셈이다.

한국타이어는 1980년대 초 타이어 업계 최초로 연구소를 설립했다. 지금은 미국 일본 중국에도 연구소가 있다. R&D 투자비용은 매출의 5% 정도다. 정일룡 한국타이어 홍보팀장은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무수히 거쳤다. 그런 과정을 수십 년 반복하다 보니 선진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는 핵심 경쟁력과 거리가 먼 부분은 과감히 아웃소싱으로 돌렸다. 예를 들면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타이어 내부에 들어가는 튜브는 외부 업체에 생산을 맡겼다. 대신 모든 역량을 타이어의 바깥 부분을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

‘반복성’의 저자들은 한국타이어를 “지난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타이어 회사”라고 설명했다. “품질이 낮은 저가 타이어를 만드는 회사였지만 지속적인 연구로 값은 유지하면서 품질은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김순기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거대 글로벌 기업들도 휘청거리는 사례가 많다”며 “‘반복성’이 기업에 주는 메시지는 갑작스러운 혁신보다는 자신의 강점을 굳건히 키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반복성(Repeatability) ::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베인앤컴퍼니가 세계적인 50대 기업의 성공 비결을 분석해 펴낸 책의 제목. 꾸준히 성장하는 장수 기업들은 핵심사업을 차별화하고, 핵심가치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며, 환경변화를 스스로 감지하고 반응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졌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아모레퍼시픽#한국타이어#베인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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