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히오르 더혼데쿠터르의 ‘벽 위의 다이애나원숭이와 하늘을 나는 네 마리의 새’(1690년). ⓒToledo Museum of Art
2009년, 어느 미술 시장에 나온 네덜란드 화가의 1690년작 그림이 미국 톨레도 미술관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끌었다. 화면 속 원숭이는 미술관에 소장된 18세기 모자이크 거장 자코모 라파엘리의 작품 ‘마이크로 모자이크 박스’ 속 원숭이와 똑 닮아있었다. 흰 초승달 무늬, 구부린 왼팔, 앉아있는 벽까지 흡사했다. 미술관 측은 “라파엘리가 이 그림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음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설명한다.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벽 위의 다이애나원숭이와 하늘을 나는 네 마리의 새’는 유럽 동물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멜키오르 더 혼데쿠터(1636~1695)의 작품이다. 라파엘리를 비롯한 여러 후대 작가들이 동물을 그릴 때 그의 그림을 참고했다고 여겨진다.
더 혼데쿠터는 과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버드 피스(bird piece)’ 장르의 대가였다. 닭과 오리 같은 가금류부터 야생 새, 이국적인 새 등 온갖 조류의 부드럽고 윤기 나는 깃털을 풍부한 색감과 섬세한 붓질로 표현했다. 개나 양, 소 등 동물을 그리는 데도 탁월했다. ‘벽 위의 다이애나원숭이…’ 속 새와 원숭이는 마치 건드리면 움직이기라도 할 듯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작가는 동물화를 그리던 아버지와 유명 화가인 삼촌 얀 밥티스트 웨닉스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의 작품 속 동물들은 자연 상태의 생명체 그 자체로 묘사됐다. 과거 원숭이가 주로 술에 취하거나 장난치는 모습으로 그려져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소재로 쓰인 것 등과는 다르다. 더 혼데쿠터는 생동하는 동물의 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데 매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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