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 없는 도서전’ 디스 이즈 텍스트
책 사이에 두고 편집자-독자 대화
“책 본질로 돌아가는 물꼬 되길”
1일 서울 중구 알라딘빌딩에서 열린 굿즈 없는 도서전 ‘디스이즈텍스트’ 현장. 각 부스에선 굿즈를 나눠 주는 대신 출판사만의 개성을 살린 도장을 찍어 줬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요즘 도서전의 주인공은 도서가 아니라 ‘굿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15만 명이 찾는 화제의 행사로 자리 잡는 데도 굿즈의 힘이 컸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도서전이 열렸다. 이름부터 지향점이 분명하다. ‘디스 이즈 텍스트(This Is Text)’.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서울 중구 알라딘 빌딩에서 열린 이 도서전은 ‘굿즈 없는 도서전’을 전면에 내걸었다. 출판사 ‘이김’과 ‘힐데와소피’가 주최했고, 16개 논픽션 출판사가 참여했다.
1일 오전 찾은 현장은 도서전이면 으레 보여야 할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굿즈도 없고, 유명 저자의 북토크도, 줄을 서는 사인회도 없었다. 그 대신 조용한 대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책만 있는 도서전에 사람들이 올까 싶었지만, 600장의 사전 예매 티켓이 모두 팔렸다.
각 부스에선 책을 사이에 두고 편집자와 독자의 대화가 이어졌다. 부스마다 ‘대화 카드’가 마련돼 있었다. 출판사 ‘현실문화연구’ 부스에서 한 독자가 ‘책이 나오기까지 정말 오래 걸린 책은?’이란 카드를 가리키자, 김수기 대표의 답변이 이어졌다.
“‘세계 끝의 버섯’은 만드는 데만 7, 8년이 걸렸어요. 비문학이지만 문학적 표현이 많아서 번역자를 찾는 데만 10개월이 걸렸어요. 인간중심적 사고에 머물러서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걸 보여 주는 책입니다.”
김 대표는 “장터처럼 떠밀리듯 구경하다가 진이 빠지는 여느 도서전과 달리, 여기서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천천히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은 회차별 입장 인원을 70명으로 제한하고, 관람 시간도 70분으로 설정했다. ‘양’보다 ‘밀도’를 택했다.
대구에 있는 ‘한티재’ 출판사는 비수도권 출판사로는 유일하게 이번 도서전에 참여했다. 1인 출판사인 만큼 참가비와 숙박비 부담 때문에 서울 도서전은 늘 먼 이야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은지 대표는 “이번에는 ‘굿즈 없는 도서전’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다른 출판사들이 예쁜 굿즈를 쏟아내는 걸 보면 그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해요. 이번 도서전이 책의 ‘본질’로 돌아가는 하나의 물꼬가 되지 않을까 기대가 큽니다. 한티재를 응원하려고 대구에서, 전주에서 일부러 찾아온 독자들도 계셨어요. 그런 분들을 직접 만나는 것만으로도 다음 책을 만들 힘을 얻습니다.”
도서전을 방문한 독자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책 네 권을 구매했다는 대학원생 김다연 씨(26)는 “온라인 서점에도 정보가 넘쳐나지만, 도서전에서는 대표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책을 만들었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며 “책들이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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