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근형이 고(故) 이순재의 “연극계를 맡아달라”는 유언을 전했다. 시력을 잃으면서도 대본을 외우며 사후 첫 연기대상을 거머쥔 거장은 마지막까지도 연극계를 향한 진심을 남겼다. 뉴시스
배우 박근형이 고(故) 이순재의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평생 무대와 카메라 앞을 지킨 거장이 끝내 남긴 말은 명예나 평가가 아닌, 연기와 후배에 대한 책임이었다.
박근형은 28일 방송된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해 지난달 세상을 떠난 이순재를 회상했다. 그는 “70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라 참 가슴이 아프다”며 말문을 열었다.
● “연극계 맡아달라더라…가슴에 깊이 남았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배우 박근형. SBS 갈무리박근형은 고인과의 마지막 만남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연극 공연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공연장에 오셨다”며 “끝나고 ‘앞으로 연극계는 네가 맡아야 해. 열심히 좀 해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그 말이 아직도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신구, 이순재와 함께 쌓아온 오랜 시간을 떠올리며 “셋이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연극도 함께했다”고 회상했다. 선배이자 동료였던 이순재는 끝까지 ‘연극판’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 시력 잃고 대본 안보여도 “읽어달라…들어서 외우겠다”
MBC 추모 다큐멘터리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 졌습니다’ 중 병상 위 故 이순재 씨의 모습. MBC 갈무리이순재의 연기에 대한 집념은 최근 방송된 MBC의 추모 다큐멘터리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 졌습니다’에서도 다시 조명됐다. 이곳에서는 지난 5월 병상에 누워 있던 그가 소속사 대표에게 “하고 싶은 건 작품밖에 없다. 몸을 회복해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드라마 ‘개소리’였다. 91세 고령에도 주연을 맡은 그는 서울과 거제도를 오가는 강행군을 묵묵히 견뎠다.
특히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대본을 큰 소리로 읽어달라. 들은 뒤 모두 외우겠다”며 연기 투혼을 불태웠다는 사실이 알려져 감동을 더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생애 처음으로 KBS 연기대상 대상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현역 배우로 무대에 서고자 했던 삶의 마침표였다.
● 끝까지 후배를 남긴 사람
박근형이 고 이순재의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연기와 후배를 걱정하며 끝까지 무대를 놓지 않았던 거장의 삶이 다시 조명됐다. 뉴시스이순재는 배우에게 연기를 ‘직업’이 아닌 ‘언어’라고 말해왔다. 선배 대우를 받기보다 현장에서 후배들과 같은 위치에 서길 원했고, 끝까지 연극과 배우들의 내일을 걱정했다. 그가 늘 강조했던 “좀 손해 본 듯 살자”는 말은, 최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겸손을 강조하던 삶의 태도이기도 했다.
연기와 후배를 남기고 떠난 사람. 이순재는 한국 연극계와 방송 역사에 영원한 이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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