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존 로스(1842~1915)는 1877년 자신과 같은 선교사나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조선어 첫걸음’ (Corean Primer) 교재를 만들었는데 이때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적용했다. ‘조선어 첫걸음’ 교재(왼쪽)와 존 로스 선교사.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갈무리)
‘큰집’과 ‘큰 집’, ‘아버지 가방에’와 ‘아버지가 방에’. 띄어쓰기 하나만으로 전혀 다른 의미가 만들어진다. 한국어에서 띄어쓰기는 단순한 문법 규칙이 아니라,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한글 띄어쓰기 체계의 출발점이 19세기 말 한국에 온 외국인 선교사였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한글 이름 나요한, 1842~1915)다.
● 한글 띄어쓰기는 언제 처음 도입됐나?
국립한글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존 로스는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해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을 만들었다.
그는 1877년 자신과 같은 선교사나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 교재를 만들었는데 이때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적용했다.
조선시대 한글은 중국∙일본과 마찬가지로 세로쓰기가 일반적이었으나, 로스가 가로쓰기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띄어쓰기를 적용했다고 한다.
● 로스 “한글이 한문보다 의미 전달 정확”
로스는 책에서 “한글은 소리글자로 이루어져 자모만 배우면 누구나 읽고 배울 수 있는 글자”라며 한글의 우수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조선의 무역상인 이응찬 등의 도움을 받아 신약성서를 한글로 번역했다. 로스는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한글로 쓰인 성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낯선 타지에서 한국어 성경을 완성한 로스는 “한글이 한문보다 훨씬 정확한 번역본을 만들 수 있는 글자”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 띄어쓰기는 어떻게 정착됐나?
이후 호머 헐버트 선교사와 한글학자 주시경 등이 1896년 최초의 한글판 신문 ‘독립신문’ 을 발행하며 띄어쓰기를 적용해 널리 퍼지게 됐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며 띄어쓰기는 전국적으로 정착됐다. 초기에는 사람마다 쓰는 방식이 달랐지만, 표준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 한국어 문법의 핵심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띄어쓰기의 뿌리는, 19세기 외국인 선교사의 작은 실험에서 비롯된 셈이다.
● 오늘날 띄어쓰기는 왜 중요한가?
띄어쓰기는 단순히 글자를 구분하는 장치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검색 정확도와 정보 전달 효율성에도 직결된다. 띄어쓰기 오류가 있으면 AI 번역이나 음성 인식 결과가 달라지고, 온라인 정보 검색에서도 혼선이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띄어쓰기는 한국어 표현의 정확성을 넘어,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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