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호랑이-까치는 민화에 왜 등장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3일 01시 40분


◇전통 미술의 상징 코드/허균 지음/296쪽·2만2000원·돌베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신스틸러 중엔 눈 3개 달린 까치를 꼽을 수 있다. 우리 전통 민화엔 눈 3개 달린 동물이 또 있다. 바로 개(狗)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 미술사를 전공하고 한국민화학회 고문으로 있는 저자가 그림과 조형물, 건축물에 숨겨진 한국적 무속 전통을 풀어냈다.

주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여러 술책 가운데 민간에서 널리 활용된 것 중 하나가 부적이다. 이 가운데 회화적 성격이 강한 것을 문자 위주의 부적과 구별해 ‘부작화(符作畵)’라 부른다.

부작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개다. 개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호랑이, 강한 부리를 가진 매처럼 용맹하고 포악한 조수(鳥獸)는 아니다. 하지만 벽사(辟邪·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의 주체로 부작화에 자주 등장한다. 평소 못 보던 것이 나타나면 경계하며 짖는 개의 속성과 관련이 깊다.

개를 주인공으로 한 벽사화 가운데 눈이 3개 달린 개가 등장하는 그림도 있다. 눈을 세 개로 표현한 건 귀신을 수색하는 영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묘책이다. 장례 때 귀신을 쫓기 위해 쓰는 방상시(方相氏) 탈의 눈이 네 개인 것과 같은 이치다.

벽사용 장식에는 귀신도 많이 쓰였다. 더 무서운 귀신으로 귀신을 쫓으려는, 나름의 이이제이(以夷制夷)인 셈이다. 도깨비나 괴수 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외형만으로는 정체를 구분하기 어려워 귀면으로 통칭한다. 궁궐, 왕릉, 사찰 등 건축물에서부터 양반 가옥, 무덤의 부장품,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벽사용 주술 도구로 등장한다.

옛사람들은 귀신들이 놀라 도망칠 만큼 귀면의 형상이 공격적이고 위협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때문에 그런 모습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일본,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 장인들이 만든 귀면의 표정은 생각만큼 사납거나 독살스럽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경계의 눈초리에 관대함이 배어 있고, 공포감을 조성하려 했던 표정에서조차 해학과 온화함이 묻어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모나지 않은 한국인의 타고난 심성이 귀면 미술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썼다. 글로벌 대중문화 코드가 된 한국적 상징 코드의 뿌리를 짚어보는 재미가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한국 미술사#한국민화학회#부작화#벽사#눈 3개 개#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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