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 오케스트라 첫 내한… 최정상 메조소프라노가 부르는 ‘푸른 수염의 성’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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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창단… 성악가들 ‘꿈의 무대’
첫 내한서 야니크 네제세갱 지휘봉
오로페사 등 성악 협연진도 화려
내달 19,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140년 넘는 역사 동안 세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이상으로 군림해온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롯데문화재단 제공
140년 넘는 역사 동안 세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이상으로 군림해온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롯데문화재단 제공


“메트 오케스트라는 무대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항상 주의를 기울이며 작품이 변화하는 느낌을 표현해 냅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이죠. 이것이 이 오케스트라를 세계 최고중 하나로 만든 이유입니다.”(야니크 네제세갱/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음악감독)

세계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소속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이하 메트 오케스트라)가 처음 한국을 찾아온다.

1883년 창단돼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등 전설적 지휘자들의 조련을 받아온 이 악단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6월 19일 버르토크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 등을 무대에 올리고 20일에는 모차르트의 콘서트용 아리아들과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2018년부터 이 악단과 메트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캐나다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49)이 지휘봉을 든다. 네제세갱은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거쳐 현재 메트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으며 북미 출신 지휘자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화려한 성악 협연진들로도 눈길을 모은다. 19일 버르토크의 ‘푸른 수염의 성’은 메조 소프라노 중 현역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엘리나 가랑차가 주인공 주디트 역으로 출연한다. 라트비아 출신 가랑차는 2008년 메트로폴리탄에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여주인공인 로지나 역으로 데뷔했고 이후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메조소프라노가 주목받는 거의 모든 역할을 정복해 왔다. 2003년엔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다.

‘푸른 수염의 성’은 성의 성주가 결혼한 아내들을 잇달아 살해한다는 샤를 페로의 동화에서 소재를 따왔다. 푸른 수염 역에는 메트와 LA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에서 활약해온 베이스바리톤 크리스티안 반 혼이 출연한다. 메트 오케스트라는 19일 ‘푸른 수염의 성’에 앞서 공연 전반부에는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과 드뷔시 ‘펠레이스와 멜리장드’ 모음곡을 연주한다.

20일 공연에서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들은 소프라노 리제트 오로페사가 노래한다. 모차르트 ‘나는 가리라, 그러나 어디로?’와 ‘베레니체에게… 태양이 떠오른다’ 등을 선보인다. 오로페사는 2019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비벌리 실즈 아티스트상을 받았고 유럽과 미국의 대표 오페라 극장들을 오가며 활약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 앞서 지휘자 네제세갱과 협연자들은 공연의 의도 등을 묻는 동아일보의 E메일 질문에 자세한 답변을 보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
―이번 공연의 곡목을 선정하는 데 무엇을 중요하게 고려하셨는지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버르토크의 ‘푸른 수염의 성’은 극적인 색채와 넓은 음악의 팔레트를 보여주는 역작입니다. 바그너 ‘방랑하는 네덜란드인’ 서곡과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공연 초반에 넣은 것은 두 작곡가가 버르토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공연의 협연자인 엘리나 가랑차와는 비제 ‘카르멘’ 공연을 함께 했고 이는 영상물로도 발매됐습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가랑차는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시대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 중 한 사람이죠. 2009년의 카르멘 공연 뿐 아니라 최근에는 빈 쉔브룬 궁전의 빈 필하모닉 여름 콘서트에서 함께 하는 등 여러 무대를 함께 했습니다. ‘푸른 수염의 성’ 여주인공은 극적인 힘과 소리의 뛰어난 컨트롤이 필요하고 그게 가랑차의 강점입니다.

―이번에 공연할 말러 교향곡 5번에 대해 말한다면.

“4악장 ‘아다지에토’는 이 교향곡의 핵심입니다. 현악기의 절묘한 멜로디가 있고 말러의 오스트리아적 분위기를 전달하며 오페라처럼 이야기를 전합니다.

―2017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해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 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홀’이라고 했습니다.

“우선은 아름다운 음향 때문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필하모니 드 파리’나 도쿄 산토리홀과 비슷한 소리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홀이란 훌륭한 관객 없이는 없는 것입니다. 한국 관객들은 특별합니다.”

―2018년 메트를 처음 맡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요.

“가족에게 저는 ‘이건 한 사람에게 너무나 커다란 일’이라고 말했고 메트를 이끌게 된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영광 중 하나입니다. 140년 이상을 쌓아나간 메트의 유산은 내게 음악가로서의 의미를 제시해 줍니다.”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서 번스타인 역을 맡은 브래들리 쿠퍼에게 지휘법을 지도하셨는데….

“지휘법을 알려주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커티스 음악원과 몬트리올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등에서 여러 지휘자를 가르쳤으니까요. 브래들리와 나는 2015년 처음 만났는데 그 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매우 친해졌습니다.”

<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이번에 공연할 버르토크의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에서 여주인공 주디트는 사랑과 두려움을 넘나들어야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가스라이팅이나 ‘스톡홀름 증후군’과 연결시킵니다. 주디트의 캐릭터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극에서 푸른 수염의 성을 돌아다니는 주디트의 여정은 복잡하고도 다층적입니다. 주디트에 대한 해석은 그가 푸른 수염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성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는데 따라, 그가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드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뢰와 호기심을 따르지만 강박과 긴장이 있는 여정이라고 나는 해석합니다. 그의 내적인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디스를 생생한 인물로 만들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하려 합니다.”

―비제 ‘카르멘’의 카르멘 역,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의 델릴라 역으로 특히 사랑받아 왔습니다. ‘푸른 수염의 성’의 주디트는 이들과 어떻게 다를까요?

“델릴라나 카르멘은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유혹적인 캐릭터로 곧잘 묘사됩니다. 반면 주디트는 사랑과 호기심 때문에 푸른 수염에게 끌리는 동정적인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델릴라나 카르멘처럼 주디트도 자신의 갈등에 직면하며 자신의 욕망이나 두려움과 싸웁니다. 델릴라는 매력적이고 카르멘은 대담하다면 주디트는 감정적입니다.”

―2022년 영국 로열 오페라의 ‘삼손과 델릴라’에 테너 백석종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백석종 씨는 다른 가수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고 친절합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전문적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잘 경청하는 훌륭한 동료였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나 하고 싶은 역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배역은 베르디 ‘아이다’에서 아이다를 질투하는 공주 암네리스입니다. 암네리스 역은 내가 오페라 가수가 되기를 결심하는 계기를 만든 역할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은 베르디 ‘팔스타프’의 퀵리 부인입니다. 그는 반드시 어른스러울 필요가 없으며 더 활기차거나 젊게 묘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외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아주체나 역이나 바그너 ‘로엔그린’의 오르투르드 역도 해보고 싶습니다.”

―남편이 지휘자 카렐 마크 시숑입니다. 댁에서 음악 얘기도 하시나요?

“전혀요, 하하하! 집에서 음악 얘기는 금기죠. 집에서는 서로 부부와 부모로서의 역할을 즐길 뿐입니다.”

<소프라노 리제트 오로페사>
소프라노 리제트 오로페사
소프라노 리제트 오로페사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부르는 데 주의할 점은 무엇일까요.

“이번에 부를 곡들에 나타나는 간결함이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잘 보여줍니다. 쉬워 보일수록 더 부르기 어렵습니다. 가수에게 부족한 점이 더 쉽게 들리기 때문이죠. 모차르트를 노래하려면 ‘무기고’에 감정적인 미묘함, 프레이징(분절법) 등 많은 것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보여야만 합니다. 훌륭한 피겨 스케이터를 보는 것처럼, ‘와, 정말 쉬워 보이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합니다.”

―예전에 플루트를 공부했고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연주했다고 들었습니다.

“플루트 공부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악기는 가사가 없기 때문에 더 쉽게 사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가수가 되면서 가사가 붙었고, 이는 내게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가사가 붙든 안 붙은 음악은 언어를 넘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전달합니다.”

―당신의 콜로라튜라(목관악기와 비슷한 기교)는 매우 정밀해서 놀라울 정도입니다. 매일 연습이 필요한가요?

“거의 매일 연습합니다. 하지만 목소리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쿠바 출신이고 프랑스 문화의 자취가 있는 뉴올리언스에서 성장했는데, 이 배경이 음악적 성장에 영향을 주었나요?

“절대적이죠! 부모님이 음악을 사랑하셔서 저는 노래하는 걸 격려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루이지애나에서 자랐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저는 프랑스어 노래를 좋아합니다. 프랑스에서 찾을 수 있는 색채와 프랑스 시, 작곡가들을 사랑합니다.”

<베이스바리톤 크리스티안 반 혼>
베이스바리톤 크리스티안 반 혼
베이스바리톤 크리스티안 반 혼
―버르토크 ‘푸른 수염의 성’에서 푸른 수염 역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푸른 수염 역할은 극단적인 요소들을 요구합니다. 굉장히 높은 음과 낮은 음, 굉장히 큰 음과 굉장히 여린 음을 모두 표현해야 합니다.”

―푸른 수염은 악인일까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까요?

“저는 푸른 수염이 ‘모두가 사랑하는 나쁜 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늙고 피곤하면서도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데려오지만 그것은 그가 부자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매력 있는 남자입니다. 그를 표현하는 음악을 들으면 전부 악하지만은 않습니다. 분명 차가운 마음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메트 오케스트라가 특별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메트 오케스트라는 가수와 함께 숨쉬는 데 익숙합니다. 특정 가수가 좋은 상태인지 아닌지, 그가 고갈된 상태인지 여유가 있는지 바로 알아채고 공연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건 이 오케스트라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가수들과 백년 넘게 호흡해왔기 때문입니다.”

140년 넘는 역사 동안 세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이상으로 군림해온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롯데문화재단 제공
140년 넘는 역사 동안 세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이상으로 군림해온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롯데문화재단 제공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메트 오케스트라#오케스트라#성악#네제세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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