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어 돈독했던 한국, 대만, 일본 시인 관계 되살릴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8일 12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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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최초 대만 현대시인협회장 선출
김상호 대만 슈핑과기대 교수 인터뷰

“아버지(김광림 시인)를 이어 1980년대 돈독했던 한국과 대만, 일본 시인들의 관계를 되살리고 싶습니다.”

최근 대만 현대시인협회장으로 선출된 김상호 대만 슈핑과기대 교수(62·사진)는 8일 전화 통화에서 “대만, 일본 시인들과 형제처럼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저도 대만 시인들과 교류를 많이 했더니 이렇게 회장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28대 한국시인협회장(1992~1994년)을 지낸 원로 김광림 시인(94)의 아들인 김 교수는 1988년 유학을 계기로 대만에 정착한 뒤 2000년 7월 대만 현대시인협회 창립 때부터 활동한 멤버 중 한 명이다. 한국 국적인 그를 위해 협회는 대만 국적자가 아니어도 회원이 될 수 있도록 회칙을 바꿨다. 덕분에 협회 창립 23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 협회장이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김 교수는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대만 현대시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부담도 된다”며 웃었다.

그는 아시아 시단 교류의 첫 단추를 뀄던 아버지 김 시인을 따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김 시인은 1980년 일본 도쿄에서 제1회 아시아시인 회의에 참석한 뒤 1981~1993년 대만 시인 천첸우(陳千武·1922~2012), 일본 시인 다카하시 기쿠하루(高橋喜久晴·1926~2008)와 함께 아시아현대시집을 출간했다. 1997~2006년에는 동아시아 시서전(詩書展) 개최에 힘을 모아 아시아 시단의 교류의 활성화를 꾀했다.

김 교수 또한 국내에서 아시아문예지를 발간하는 ‘푸른세상’과 대만현대시인협회를 연계해 2013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까지 해마다 ‘아시아 시 감상축제’를 개최해왔다. 올 10월에는 서울에서 축제가 열린다.

그는 “아버지께서 2011년 병중에 있던 천첸우 시인을 보기 위해 대만에 마지막으로 오셨는데, 두 분이 서로 다신 못 볼 거란 생각에 하염없이 손을 흔들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회장 재임 기간 아시아 시단의 교류에 적극 나설 시인들을 발굴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꾸준히 한국과 대만에서 양국의 시집을 번역 출간하는 등 가교 역할도 해왔다. 그는 2006년 김 시인의 시선집 ‘반도의 아픔’, 2013년 문덕수 시인(1928~2020)의 시선집 ‘문덕수 시선’을 대만과 중국에서 각각 번역 출간했다. 국내에는 천첸우 시인 등 대만 시인의 시집을 번역해 소개했다. 그는 “한국과 대만은 100년 전부터 비슷한 역사를 겪어 그런 현실이 반영된 목소리가 담긴 시가 많은 반면, 일본은 서정시가 주를 이룬다”면서 “한번은 일본 시인이 ‘쓸 게 많아 좋겠다’는 농담을 던져 속으로 참 괴로워 ‘쓸 것 없어도 좋으니 그런 역사를 안겪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받아친 기억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1928년 대만 타이중 역전에서 일본 왕족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를 척살한 독립운동가 조명하 의사(1905~1928) 연구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2005년 대만 역사사전을 보다 일본의 시각으로 왜곡된 내용이 있어 ‘뒤집어 놔야겠다’고 결심한 뒤 타이중 시정부와 싸워 2018년 조 의사 거사 장소에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면서 “올 5월에는 한국외대에서 대한독립 4대 의사인 안중근(1878~1910), 조명하, 이봉창(1901~1932), 윤봉길(1908~1932)을 조명하는 학술회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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