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먹고 노래하며 추모… 흑우 선생도 잘 놀고 가셨겠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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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김대환 19주기 공연 열어
日 전통북 무형문화재 등 대거 참석
원로 여배우 문희 특별공연도

1일 열린 흑우 김대환 추모 공연에서 노래하는 장사익(가운데). 왼쪽이 1세대 트로이카 중 한 명인 배우 문희다. 김녕만 사진가 제공
1일 열린 흑우 김대환 추모 공연에서 노래하는 장사익(가운데). 왼쪽이 1세대 트로이카 중 한 명인 배우 문희다. 김녕만 사진가 제공
신묘하다. 다섯 손톱, 날을 세워 가슴에 줄을 긋고, 한 점 한 점 인두로 지져 부르는 저 소리가 어찌 그리 따뜻할까. 슬픔은 또 어디 갔을까. 명색이 추모 공연인데…. 사방은 온통 즐거움뿐이다.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는 1일 흑우(黑雨) 김대환 19주기 추모 공연이 열렸다. 김대환(1933∼2004)은 열 손가락에 북채, 장구채, 드럼 스틱 등 여섯 개의 채를 쥐고 각종 타악기를 두드리는 독특한 연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타악기 연주자. 쌀알 한 톨에 반야심경 283자를 모두 새겨 기네스북에 등재된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매년 그가 타계한 3월 1일 열리는 이 공연에는 소리꾼 장사익, 해금 강은일, 거문고 허윤정, 트럼펫 최선배, 오쿠라 쇼노스케(일본 전통 북), 요코자와 가즈야(일본 전통 피리), 가가야 사나에(현대 무용) 등 흑우와 인연 있는 한국과 일본의 최정상 예술인들이 함께한다. 흑우를 아버지처럼 여기는 오쿠라는 일본 무형문화재 인증 보유자로 전통극인 노(能)의 보존과 전승에 힘쓰고 있다.

장사익은 “김대환 선생님이 동요 ‘송아지’를 박자 맞추지 말고 부르라고 했다. 박자를 파괴해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속으로 (박자를) 세고 있잖아. 그것까지 깨야지’ 하셨다. 그게 지금의 소리꾼 장사익이 된 계기”라고 했다. 공연 중간중간 장사익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도 소개됐다. 그는 보험회사 직원 등 15개 직업을 전전하다 1995년 40대 중반에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을 냈다. 앞서 1970년 장나신이란 예명으로 여러 가수와 앨범을 낸 적이 있었다. 곡명은 ‘대답이 없네’. 결과도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추모제지만 공연장을 가득 채운 것은 즐거움이었다. 이날 1960년대 영화계 1세대 트로이카(문희 윤정희 남정임) 중 한 명인 배우 문희의 특별공연도 열렸다. 그가 취미로 정가(正歌)를 배우고 있다는 걸 안 장사익이 몇 년 전부터 함께 하자고 졸랐다고 한다. 문희는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 등 두 곡을 불렀다. 문희는 “많이 부족하지만, 장 선생님이 ‘그냥 함께 어우러져 놀면 된다’고 해 용기를 냈다”라고 했다.

250여 개 객석은 꽉 찼다. 장사익은 공연 시작 5분 전까지 흑우가 타던 오토바이 전시물 앞에서 모든 관객과 인사하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흑우를 추모했다. 무대의 마지막은 ‘아리랑’ 떼창. 관객들과 함께하는 뒤풀이 겸 즉석 공연도 이어졌다. 장사익은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누구든 마음껏 노래도 부르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말 그대로 잔치”라며 “흑우도 한바탕 잘 놀다 가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김대환 19주기#추모 공연#흑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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