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늦어져도… 배우 바뀌어도… ‘나 몰라라’ 뮤지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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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 기계 결함으로 공연 중단… ‘베토벤’ 배우 핑계로 20분 늦게 시작
관객들에 제대로 된 보상없이 사과만
제작사 “사고 경중 계량화 무리” 해명… 해외선 ‘프리뷰’ 공연 통해 사고 대비

지난달 27일 출연 배우의 사정으로 20분간 지연됐던 뮤지컬 ‘베토벤’. 제작사는 사과문을 냈지만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관객에게 별도의 보상은 하지 않았다. EMK 제공
지난달 27일 출연 배우의 사정으로 20분간 지연됐던 뮤지컬 ‘베토벤’. 제작사는 사과문을 냈지만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관객에게 별도의 보상은 하지 않았다. EMK 제공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뮤지컬 ‘베토벤’이 배우 사정으로 시작 시간이 20분 지연됐다. 이날 공연은 오후 2시 반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결국 관객들은 좌석에서 멍하니 20분간 대기해야만 했다. 제작사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별도의 보상은 없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공연의 경우 ‘30분 이상 지연 시 보상’이라고 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EMK 관계자는 “초과 주차비는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 뮤지컬 제작사들이 공연 지연, 캐스팅 당일 변경 등이 발생해도 관객에게 제대로 배상하지 않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엔데믹으로 접어들며 공연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각종 사고가 발생하는 데다 이에 대한 대책도 부실해 관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과문만 덩그러니 게재


지난해 성탄절에는 뮤지컬 ‘물랑루즈’가 기계 결함으로 공연이 중단됐다. 2막 공연 중반 크리스티안과 사틴이 넘버 ‘크레이지롤링’을 부르던 중 갑자기 노래가 끊기고 공연장 불이 켜진 것. 결국 “기계 결함으로 잠시 공연을 중단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뒤 3분간 기기를 정비한 후 공연이 재개됐다. 제작사인 CJ ENM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불편을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문만 올렸을 뿐 별도의 보상은 없었다. 관련 게시물엔 항의성 댓글 80여 개가 달렸다.

주연 배우가 갑작스럽게 교체돼도 보상은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데 그친다.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지난달 17일과 이달 9일 각각 러빗 부인 역과 토비아스 역의 배우가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에 참여하지 못해 공연 당일 배우가 변경됐다. 보상은 예매 환불·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제작사의 보상 기준이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공연이 30분 이상 지연·중단되면 티켓 값 110%를 배상해야 하지만 30분 미만일 경우 제작사가 자율적으로 보상안을 결정한다. 주요 출연자가 바뀔 때도 자율적으로 110%를 돌려주게 돼 있다. 지난달 13일 음향기기 오류로 공연이 30분 지연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경우 1막까지만 본 후 환불을 요청한 관객에게 제작사 쇼노트 측이 티켓 값의 110%를 돌려줬다.

●해외에선 ‘프리뷰 공연’으로 완성도 높여


제작사들은 사고가 날 때마다 관객에게 배상할 경우 손실이 클 뿐 아니라 사고의 유형과 규모가 천차만별이라 범주를 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쇼노트 관계자는 “초연은 회당 들어가는 제작비가 막대하다. 전석 매진돼도 남는 게 많지 않아 환불까지 해주면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또 다른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무대장치 결함, 배우 컨디션은 예측이 어렵고 사고의 경중을 계량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외 역시 환불이 수월하진 않지만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프리뷰 제도’를 운영해 사고에 대비한다. 프리뷰는 본공연 전에 미리 문제점을 파악해 보완하기 위한 시범공연으로, 관객은 대신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파이더맨’은 2010년 초연 당시 안전을 이유로 프리뷰만 무려 7개월간 진행됐다. 국내에서는 일부 작품의 경우 프리뷰를 2∼4일 정도 하고 티켓을 할인해주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프리뷰를 통해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고 유형을 파악하고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며 “국내는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탓에 단기공연 위주로 열려 제작사들은 프리뷰에 관심이 없고 치열한 티켓 예매 전쟁에 지친 팬들은 이해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뮤지컬#나몰라라#물랑루즈#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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