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번역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은 일제강점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번역본만 200여 권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널리 알려진 이 독백은 현재까지 동일한 문장으로 번역된 적 없는 번역계의 난제였다. 번역 경쟁이 붙으면서 원문의 문법 구조나 뜻과 멀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문학자이자 번역가로 ‘노인과 바다’(민음사), ‘위대한 개츠비’(민음사), ‘앵무새 죽이기’(열린책들) 등 30권이 넘는 명저를 번역한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부 명예교수(75·사진)는 최근 펴낸 ‘번역가의 길’(연암서가)에서 “온갖 번역이 난무하는 건 기존 번역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번역하려는 의욕이 빚어낸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읽기 쉽게 하거나 다른 번역본과 다르게 번역하려 할수록 원문과 멀어진다. 번역가가 갖춰야 할 덕목은 독창성이 아니라 성실성”이라고 강조했다.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부 명예교수. 본인 제공
“저도 한때는 독창성이나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낯설면 낯선 그대로, 외국 문학을 그대로 전달하는 작업도 필요다는 걸요. 독자들에게 이국의 낯선 세계를 보여주는 것 역시 번역가의 책무이니까요.”
다만 그는 성이 평등한 번역을 위해 과감해지기도 한다. 김 명예교수는 “우리가 무심코 써왔던 단어가 사실은 가부장적인 사회를 지탱해왔다”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부장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며 ‘여교사’처럼 특정 직업에서 성별을 드러내는 표현은 원문을 훼손하더라도 그냥 ‘교사’로 번역한다. “이제 직업을 나타낼 때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용하는 ‘아내’라는 표현에는 “어원 상 여성을 집 안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 성 편견이 담겨 있다”고 보고 대신 ‘부인’이라는 단어를 쓴다.
“무심결에 써온 단어에 의존하면 안 됩니다. 좋은 번역가라면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왔던 단어의 어원까지 찾아보고, 그 단어에 담긴 가부장주의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번역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부장 질서를 무너뜨릴 책무가 있으니까요.”
그는 “번역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은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그는 2008년 완역해 출간한 ‘앵무새 죽이기’를 2015년 다시 번역해 출간했다. 최근까지도 이전에 번역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다시 손보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시대에 따라 언어도 변할뿐더러 독자의 감수성도 변한다”며 “변화하는 시대의 감수성까지 옮길 줄 아는 번역가가 좋은 번역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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