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만 스포일러 주의해야 하나요? 스포일러 주의 ‘전시’도 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5일 1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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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문구를 영화 기사만 쓰는 게 아니었다. 전시에도 스포일러가 있다.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한 전시 ‘마틴 마르지엘라’가 그렇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인 마르지엘라(65)는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한 뒤 지난해부터 예술가로 전시 활동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설치, 조각, 페인팅 등 작품 50점을 선보이는 국내 첫 개인전이다.

마지막 장면을 봐야만 이전 신(Scene)들이 이해되는 어느 영화나 드라마처럼, 이 전시에도 나름의 반전이 있다.

전시장에는 신체 일부를 확대한 조각과 회화, 머리카락 등을 사용한 작품들이 놓여있다.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마지막에 전시된 작품 ‘라이트 테스트’(2021~2022년)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라이트 테스트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라이트 테스트’는 금발머리를 한 여성을 촬영한 짧은 영상이 반복 재생되는 작품이다.

여성은 카메라를 등진 채 서있다. 서서히 몸을 돌려 빛에 얼굴을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이목구비가 있어야할 자리엔 수북한 모발이 가득할 뿐. 그리고 카메라가 정면을 조준한 순간, 여성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레드 네일즈 모델, 2021, 롯데뮤지엄 제공
레드 네일즈 모델, 2021, 롯데뮤지엄 제공
레드 네일즈, 2019, 롯데뮤지엄 제공

관람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깔깔대는 소리. 마치 “아름다운 얼굴을 기대했니? 그런 건 없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를 마주한 때, 앞서 지나온 작품들이 모두 ‘아름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례로 붉은 손톱을 형상화한 두 작품 ‘레드 네일즈’(2019년)와 ‘레드 네일즈 모델’(2021년)은 같은 형태지만 크기가 다르다. 5배나 더 큰 ‘레드 네일즈’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반감이 앞선다. 모양과 크기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미(美)에 대한 생각이 쉽게 달라진다는 것을 시각화한 셈이다.

바니타스, 2019, 롯데뮤지엄 제공

마르지엘라가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꺼린 것도 무엇이든 쉽게 평가하는 세상에 대한 반항이었던 걸까.

그는 성분표가 지워진 데오도란트 사진을 크게 인화해 설치한 작품 ‘데오도란트’(2020~2022년)를 통해 자연스러운 체취를 은폐하는 현대 사회를 고발한다. 밝은 색 모발을 가진 두상부터 회색빛 모발을 가진 두상까지 5점을 일렬로 놓은 ‘바니타스’(2019년)를 통해서는 인생을 표현해냈다.
뮤지엄 측은 “사람들은 대개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연스러움을 가리려 하지만 종국에는 패배한다. 마르지엘라는 인체와 시간에 대한 개념을 다시 환기시킨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9000~1만9000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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