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의식(儀式·ritual)은? [고양이 눈썹 No.34]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7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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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020년 6월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인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陰影)과 윤택(潤澤)과 색채(色彩)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1938년)에서

작가는 연기를 보고 커피 향을 맡으며 ‘멍’을 때렸습니다. 인스턴트 커피가 보급되기 전엔 커피를 직접 볶아야 먹을 수 있었다하니 요즘 유행하는 원두 커피를 앞서서 체험한 세대 같습니다. 이효석에게 낙엽을 태우는 행위는 아마 가을마다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었겠죠.

▽누구나 ‘나만의 제의(祭儀·ritual)’가 있습니다. 지인 중 한분은 자기 전 30분 전에는 꼭 스마트폰을 끈다고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로그아웃하는 동시에 나에게로 로그인한다”는 의미죠.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들여다보며 일상을 정리하고 내일을 계획합니다. 일부러 꼭 연필을 쓰신다네요. 지우기 좋아서라지만 ‘사각사각’ 소리와 농밀한 흑연의 향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지인의 주말 아침 리츄얼. 평소 아끼는 무쇠 손잡이 원목 쟁반에 간단한 먹거리를 놓고 갓 뽑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배우자와 함께 
마십니다. 각자 일정 때문에 부부가 평일에는 식사를 함께 할 수 없어 일주일 만에 같이 하는 주말의 아침식사는 신성하고 
거룩합니다.
지인의 주말 아침 리츄얼. 평소 아끼는 무쇠 손잡이 원목 쟁반에 간단한 먹거리를 놓고 갓 뽑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배우자와 함께 마십니다. 각자 일정 때문에 부부가 평일에는 식사를 함께 할 수 없어 일주일 만에 같이 하는 주말의 아침식사는 신성하고 거룩합니다.
▽하루 10분 글쓰기. 하루에 10분 벌서듯 벽을 마주보고 앉아 명상하기. 잠들기 전 일기 쓰기. 퇴근 이후 휴대폰을 비행모드로 바꾸기. 디지털 기기는 집에 두고 산책하기, 멍하니 하늘 바라보기. 재즈를 들으며 드립커피 내리기….

이렇게 의도적인 반복 습관들이 바로 리츄얼입니다.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의전(儀典·protocol)입니다. 어떤 분은 루틴(Routine)이라고도 부르시더군요. 사진기자들은 취재 현장에 나가기 전 장비를 점검합니다. 렌즈를 깨끗이 닦고 배터리 충전 상태를 확인합니다. 조명이 잘 작동하는지도 테스트하죠. 군인들이 사격 훈련 나가기 전 총기를 챙기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인문학적 추정과 상상입니다만, 이런 리츄얼을 현대인에게 남아있는 주술 본능, 제의 본능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현대의 주술사이고 제사장인 셈입니다.

2021년 8월
2021년 8월
▽과거의 집단 행사 중 가장 진지하고 엄중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것은 아마도 전투에 나서는 군인들의 의식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이 코앞에 있는 순간에 이긴다는 자신감, 즉 에너지를 반드시 얻어야 했으니까요.원래 의식은 단체로 공회를 하며 집단적으로 에너지를 얻고 소속감과 공통의 정서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지금도 대규모 종교행사나 사회단체의 집회는 그러하죠. 과거엔 통일된 집단의식, 특히 종교적이거나 주술적인 의식이 열렸다면 개인화된 현대에선 각자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리츄얼을 둡니다.

각자의 방식이 있으니 강요해서는 안 되겠죠. 예를 들어 내향형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원하지만, 외향형은 타인과의 적극적인 교류가 오히려 에너지원이 된다고 합니다. 에너지를 얻는 원천 리츄얼이 다른 것입니다. 내향형도 만남의 자리를 좋아하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지칩니다. 반면에 외향형은 홀로 있는 ‘성찰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기운이 빠진다고 합니다. 누구나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리츄얼이 있는 것이겠죠.

여러분만의 리츄얼은 무엇인가요?

2021년 11월
2021년 11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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