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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인연의 꼬리를 물고…부산서 ‘찐친’ 작가들이 모인 이유는

입력 2022-06-12 11:50업데이트 2022-06-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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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부산 연제구 혜원정사의 한 공간에서는 소설가 김연수 변왕중, 시인 문태준이 아이들의 손때 묻은 원고와 씨름하고 있었다. “야,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하지”라는 감탄사와 이들의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번지는 걸 보니,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일곱 해의 마지막’의 김연수 작가는 이미 10여 년 전 문단의 내로라하는 상을 휩쓴 중견작가다. 재주 많은 편집자이자 시와 소설로 등단한 변 작가는 부인 박기린, 딸 다인 씨와 함께 활동하는 가족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가재미’ ‘그늘의 발달’ ‘맨발’의 문 시인은 가장 주목 받는 시인 중 한 명으로 최근 에세이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를 출간했다.

● 인연의 부산행
문단의 중견작가들이 초중고생 대상의 백일장 심사를 위해 부산의 사찰에 모인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문 인연 때문이다. 이 사찰 주지 원허 스님과 불교계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심사위원장을 맡은 성전 스님은 출가 초기 해인사 강원(講院)을 함께 다닌 도반이다. 1997년 시작한 백일장 규모가 커지자 원허 스님은 “제대로 된 심사위원을 모시고 싶다”며 성전 스님을 졸랐다. 2007년 성전 스님에게 발목이 잡힌 이가 불교방송 PD로 불교 집안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던 문 시인이다. 이에 문 시인은 같은 경북 김천 출생의 중고교동창으로 40년 지기인 김 작가, 다시 포항 출신의 30년 지기 변 작가를 소환했다.

원고에서 잠시 눈을 뗀 이들은 세월과 사연을 더듬다 웃음을 터뜨렸다. “문태준이랑 김연수가 한 공간에서 심사하기는 쉽지 않죠.”(변 작가) “주지 스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리워 이렇게 모이는 거죠.”(문 시인) “한 사찰에서 30년 가깝게 백일장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김 작가)

원허 스님은 “순수한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들이 있어 백일장을 시작하게 됐다”며 “사찰이 기도 뿐 아니라 글과 음악, 웃음이 가득한 문화도량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25회째를 맡은 혜원 백일장은 운문과 산문 부문을 합쳐 636편이 응모됐으며 지난 11일 시상식이 열렸다.

● 해운대의 바닷가
심사 뒤 해운대의 한 식당에서 다시 만난 세 작가는 여간해서 허점이 잡히지 않는 ‘찐친’이었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내면 몇 차례 다툴 법도 한 데 그런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라고 묻자 김 작가가 문 시인을 향해 “내가 먼저 등단해 삐졌을까?”라며 했다. 문 시인은 “뭐, 1년 먼저 등단했지만 너는 시가 안돼 소설로 갔잖아”라며 “저기 둘은 시와 소설 모두 등단한 2관왕인데, 나만 금메달이 하나”라며 웃었다.

이들은 “서로 코가 꿰여 시작한 심사이지만 이제는 이 무렵 부산행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제주 불교방송 국장을 맡아 현지에 정착한 문 시인은 제주, 김 작가와 변 작가는 각각 경기 고양시와 강원 강릉시에서 부산으로 향한다. 변 작가는 “젊을 때는 약속하지 않아도 저녁 무렵이면 어느새 한 자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어렵다”며 “그래서 내년, 내후년 부산행이 벌써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심사도 글에 대한 평가에 앞서 배움이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이들의 말이다. 김 작가는 “글로는 잘 다듬어지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읽다보면 울컥할 때가 많다”고, 문 시인은 “아이들의 시 자체가 때가 묻지 않은, 천진불(天眞佛)”이라고 했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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