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패전의 폐허에서 세운 원칙, 그것이 독일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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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왜 잘하는가/존 캠프너 지음·박세연 옮김/456쪽·2만3000원·열린책들

1945년 ‘패전한 전범국’이던 독일은 이후 기적적인 경제 성장과 통일을 이뤘고 세계 질서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베를린 연방의사당 앞 독일 국기와 경제 기적의 상징 라인강, 과거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왼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 사진 출처 Unsplash
1945년 ‘패전한 전범국’이던 독일은 이후 기적적인 경제 성장과 통일을 이뤘고 세계 질서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베를린 연방의사당 앞 독일 국기와 경제 기적의 상징 라인강, 과거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왼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 사진 출처 Unsplash
“지금까지는 미국과 영국이 세상의 등대와 같은 나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금 두 나라는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유기하고 있다. 누가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일어설 것인가?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설 것인가? 독일만이 그럴 수 있다.”

이 책의 제목만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실제 내용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만의 특유한 분석이나 ‘단독 보도’는 없다.

세 가지는 염두에 두고 읽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첫째, 저자는 ‘텔레그래프’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자를 지낸 영국인이다. 독일에 대해 본능적인 경쟁심과 질투심을 지닌 나라의 일원이 밝히는 ‘독일 예찬’인 셈이다.

둘째, 이 책의 원서는 2020년 출간됐다. 빠르게 번역 소개된 셈이지만 그사이 저자를 한숨짓게 만든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물러났고 그 후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의 독일 역할론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셋째, 저자는 주제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논지를 맞춰 나가지 않는다. 그 대신 수많은 사실(史實)과 사실(事實)을 쏟아낸다. 그 팩트들은 때로 주제를 위반한다. 독일의 인프라는 낙후됐고 극우 정당이 세를 불리며 러시아 중국 등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태도는 종종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저자는 미국 정치평론가 조지 윌의 말을 빌려 전한다. “오늘날의 독일은 세상이 봐왔던 최고의 독일이다.”

이 모범 국가의 성적표에서 A 이상을 받은 과목은 많다. 유럽 최고의 경제력을 보유한 독일인은 저축하고 또 저축한다. 연방정부도 각 주정부도 재정 균형을 맞추는 데 노력을 집중한다. 그렇게 비축한 ‘곳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독일인은 사회적 결속과 타협, 양보에 익숙하다. 100만 명 가까운 독일인이 소방 자원봉사자로 등록돼 훈련을 한다. 1년에 일주일씩 마을의 힘든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전 주민이 나서는 전통(케어보헤)이 있다. 난민 수용소 설치에 대한 집단 반대 같은 이슈가 있으면 문화 행사를 열어 명사들과 주민들을 초대하는 식으로 해결한다.

국경 밖 이웃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독일이 오랫동안 ‘보호받는 아이’로 머물러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브렉시트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독일은 각국의 통합과 자유무역의 중심 역할을 떠맡았다. 일찍이 ‘부자 나라’로 부러움을 샀지만 그들은 부유함보다 이웃에 대한 온정으로 존경받는 나라가 되고 싶었으며, 그 이상을 실현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러운 독일’을 만들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를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0)시’에서 시작해야 했던 여건에서 찾는다. 역사에서 찾을 모범이나 준거는 없었다. 그 대신 절차에 집중했고, ‘똑바르게’ 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독일인은 규칙에 대한 강박을 가졌고, 갈등이 있으면 절차와 대화로 풀어갔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최근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독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밀폐된 창문이 떠오릅니다. 어떤 나라도 그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창문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겁니다.”

그 말은 신뢰가 최고의 자산으로 인정받는 나라에 대한 은유였다. 메르켈이 16년 임기 내내 보여준 신뢰와 신중함은 오늘의 독일 사회를 나타내는 두 가지 특징이기도 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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