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나이들어도 시는 늙지 않잖아요” 2030들, 老작가의 서정에 푹 빠져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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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독자들, 70대 시인 작품에 열광
“난해한 주제도 쉽고 간결하게 표현”

나태주
“나태주 시인을 꼭 뵙고 싶습니다.”

최근 출판사 열림원엔 20, 30대 독자들의 이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열림원은 올 1월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에 나태주 시인(77)의 산문을 얹은 에세이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포함해 나 시인의 작품을 꾸준히 출간했다. 김현정 열림원 주간은 “나 시인은 시를 쉽게 쓰기에 기존 중장년 독자뿐 아니라 젊은 독자들도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며 “나 시인을 만나거나 통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묻는 젊은 독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MZ세대(밀레니엄+Z세대)가 70대 이상 노년층 시인들의 새로운 독자로 떠오르고 있다. 젊은 시인들이 내놓은 현학적인 시에서 공감을 얻기 어려워지자 MZ세대는 연배가 높은 시인들의 작품을 찾고 있다.

나태주의 ‘한 사람을 사랑하여’, 최승자의 ‘연인들’, 이어령의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왼쪽 사진부터). 올 2, 3월 출간된 이들 시집은 MZ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다. 각 출판사 제공
나태주의 ‘한 사람을 사랑하여’, 최승자의 ‘연인들’, 이어령의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왼쪽 사진부터). 올 2, 3월 출간된 이들 시집은 MZ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다. 각 출판사 제공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나 시인이 올 2월 펴낸 시집 ‘한 사람을 사랑하여’(홍성사)는 20, 30대 독자 비율이 38.4%에 달한다. 특히 올 1월 아이돌 그룹 출신의 배우 유라와 함께 에세이 ‘서로 다른 계절의 여행’(북폴리오)을 펴내는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한 나 시인의 새로운 도전이 인정받는 분위기다. 박혜란 홍성사 편집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 시인의 시를 읽은 20, 30대 독자들은 작가가 77세 희수(喜壽)의 시인이 아니라 동년배라 착각할 정도로 그의 시는 늙지 않았다”고 했다.

최승자
올 2월 개정판으로 출간된 최승자 시인(70)의 시집 ‘연인들’(문학동네)을 구입한 독자 가운데 20, 30대는 58.7%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개정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최 시인의 에세이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난다) ‘어떤 나무들은’(난다) 역시 20, 30대 독자가 절반 이상이다. 김민정 난다 대표는 “젊은 독자가 최 시인을 좋아하는 건 고통, 죽음처럼 난해한 주제도 간결하고 솔직하게 풀어놓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령
지난달 15일 출간된 고 이어령 문화부 장관의 유고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열림원)는 부녀의 이야기를 다뤄 “부모님과 함께 읽으려 샀다”는 MZ세대 독자들이 적지 않다.

출판계에서는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김 대표는 “최 시인의 작품은 40대 이상 독자들이 주로 찾았기에 젊은층이 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한데 20, 30대 독자들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노년층 문인들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쉽고 간결한 언어로 표현해 젊은층을 새로운 독자로 유입시키고 있다”며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지에 따라 시를 판단하는 MZ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젊은 시인들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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