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예능 나와야 팔린다… 미디어셀러로 뒤덮인 서점가

이호재 기자 입력 2021-10-18 14:03수정 2021-10-1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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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과 관련된 책들이 연달아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출판계의 미디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드라마를 글로 옮긴 책인 대본집이 서점가를 점령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면서 출판사의 자체 기획 능력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다음달 8일 출간 예정인 ‘갯마을 차차차 2’(북로그컴퍼니)와 ‘갯마을 차차차 1’(북로그컴퍼니)은 예약 판매만으로 각각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에 올랐다. 17일 종영한 tvN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대본집인 이 책들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도 차지했다. 배우의 친필 사인이 수록됐다는 점이 드라마 시청자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는 평가다. 특히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2권에 실려 1권보다 인기를 끌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대본집은 드라마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려는 소장 상품에 가깝다”며 “드라마 시청자가 주 소비자인 대본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이례적”이라고 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책들도 판매량이 급증했다. 남자 주인공이 드라마에서 읽었던 에세이 ‘월든’(은행나무)과 시집 ‘에코의 초상’(문학과지성사)은 각각 예스24 에세이 분야 11위, 시 분야 3위에 오르고 판매량이 3.7배, 32.6배 늘었다. 올해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소개된 작가의 저서 역시 방송 출연 직후 판매량이 크게는 수백 배 높아진 바 있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돼 인기를 끄는 ‘드라마 셀러’ ‘예능 셀러’가 서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계에선 출판사의 자체 기획 능력이 떨어진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 씁쓸한 현상이라는 평가다. 출판사가 직접 사회 현상을 분석해 저자를 섭외하고 책을 기획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미디어에 소개되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일부 출판사 편집자들은 방송 작가들에게 “우리 책을 소개해 달라”고 대놓고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출판 일은 영원한 벤처사업”이라며 출판사의 자체 기획을 강조하던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 등 기존 출판인들의 도전 정신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중형출판사 편집자는 “출판사들이 어렵고 현학적인 문장을 쓰며 대중과 멀어지는 동안 ‘유퀴즈 온 더 블록’의 MC 유재석은 대중이 궁금해할만한 작가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대중에게 다가갔다”며 “출판사들이 최근 시도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가 효과적이었는지 뒤돌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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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유튜버가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책은 최소 72종이다. 유튜버가 모든 것을 기획하거나 영상에 담은 것을 그저 글로 옮긴 책이 상당수다. 한 대형출판사 편집자는 “자신의 채널을 홍보하려는 유튜버와 유튜버의 ‘셀링 파워’를 이용하려는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현상”이라며 “카카오의 콘텐츠 구독 플랫폼 ‘브런치’에 연재된 글을 출판사가 받아서 펴내는 위태로운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출판사는 책의 인쇄, 판매처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78개 출판 기업 매출액은 4조8080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4.1% 감소했다. 이처럼 갈수록 침체되는 출판계에서 미디어를 통해 책 판매량 자체가 늘어나는 일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김태희 예스24 예술·에세이 MD는 “출간 당시에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거나 잊혀졌던 작품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화제되는 현상을 독서 문화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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