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삶의 끝에 선 아버지에게 배운 것

정성택 기자 입력 2021-10-09 03:00수정 2021-10-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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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레이첼 클라크 지음·박미경 옮김/376쪽·메이븐·1만6800원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매일 돌보는 호스피스 의사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선 슬픔의 무게를 견뎌내기 힘들다. 저자는 그 경험을 담담하게 일기처럼 써 내려간다.

평생 지역 보건 전문의로 일해 온 저자의 아버지는 4기 말기 암 진단을 받고 딸과 통화를 하며 어떻게든 웃을 일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기 암 환자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한다.

항암치료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게 되자 아버지는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아픈 몸으로 집에서 1900km나 떨어진 곳을 운전해서 가겠다는 아버지를 보며 저자는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자신에게 놓인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보게 된다. 매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음미할 때 보통의 삶도 위대해질 수 있다.

“남은 나날을 ‘왜 나지? 도대체 왜 나야?’라고 따지면서 낭비할 수도 있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아니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 가고 있어.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저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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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암세포의 탐욕스러운 식욕은 막을 수 없다. 쇠약해져 가는 아버지는 세상과 분리돼 간다. “늘 친절해야 한다”는 유언 같은 아버지의 뜬금없는 말을 듣는 순간 딸도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는다.

아버지를 보낸 후 저자는 새삼 깨닫는다.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에 사랑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모르핀과 갖가지 약물이 고통을 줄여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도 결국 핵심 치료제는 인간적인 연결이라고.

저자는 기자에서 호스피스 전문의로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되는 과정도 적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을 호스피스에서 돌보고 치료하면서 겪은 감정도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선 최첨단 의학기술보다 환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치료의 답이 있다고 강조한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아버지#죽음#항암치료#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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