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노장의 손끝에서 빚어진 ‘빛과 그림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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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작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10월 12일까지 160여 작품 공개

후지시로 세이지의 대표작 ‘월광의 소나타’(왼쪽 사진)와 그가 한국전을 위해 제작한 ‘잠자는 숲’.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
후지시로 세이지의 대표작 ‘월광의 소나타’(왼쪽 사진)와 그가 한국전을 위해 제작한 ‘잠자는 숲’.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
97세의 화가는 종이를 오리고 붙여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난쟁이를 만든다. 난쟁이는 하늘을 날기도 하고, 피리를 불기도 한다. 난쟁이의 까만 실루엣과 빛의 조화는 단순하면서도 풍요로워 즐거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림자 회화(가게에)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전시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전’이 10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가게에’는 밑그림을 그리고 잘라 셀로판지를 붙이고, 조명을 스크린에 비춰 색감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장르의 작품이다.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의 균형, 오려 붙인 재료 등을 치밀하게 계산해 완성하는 가게에는 라이팅 간판광고의 효시이기도 하다. 후지시로는 가게에를 이끌어온 인물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160여 점을 선보인다.

후지시로는 이번 한국 전시만을 위한 작품도 제작했다. ‘잠자는 숲’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모티브로 한다. “내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 여기며 혼신을 다해 작업했다”는 그는 하루 7시간 이상 작업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전래동화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한국 어린이가 지닌 동심의 세계를 자신의 작품에 꼭 소개하고 싶다고 밝혔다.

후지시로는 10대에 수채, 유채 교육을 받았다. 학창 시절에 그린 회화도 전시에 포함돼 있다. 20대에 혁신적인 예술을 추구하며 골판지와 전구를 사용해 가게에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는 정전이 잦았고, 그 속에서 후지시로는 가게에를 통해 아름다움을 찾았다.

‘일본의 디즈니’라 불리는 그의 화폭에는 따뜻한 환상의 세계가 담겼다. 대표작인 ‘월광의 소나타’는 은은한 달빛에 어린 나뭇잎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묘사해 빛과 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은하철도의 밤’은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 영향을 미친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 철도의 밤’을 그림책으로 만들며 탄생한 작품이다. 이 그림책은 세계 3대 그림책상 중 하나인 브라티슬라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의 그림은 평화를 추구한다. 작품 ‘슬퍼도 아름다운 평화로의 유산’은 20만 명 이상이 숨진 폐허의 현장인 히로시마 원폭도 위로 종이학이 날아간다. 비극과 함께 평화와 공존을 생각하게 한다. 10월 12일까지. 성인 1만8000원, 청소년 1만4000원, 어린이 1만 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후지시로 세이지#빛과 그림자의 판타지전#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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