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랭보?… 편지속에 그대로 담겨있죠”

전채은 기자 입력 2021-05-10 03:00수정 2021-05-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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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 서한집 시리즈 ‘상응’… 나쓰메-다자이에서 랭보까지 출간
“우리는 사랑의 계절에 있고, 저는 곧 열일곱 살이 됩니다. 흔히 말하듯이 희망과 몽상의 나이지요. 그리하여 여기 저는, 뮤즈의 손가락이 닿은 아이로서, 진부하다면 죄송합니다, 제 신실한 믿음, 저의 희망, 저의 감각, 시인들의 것인 이 모든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걸 봄의 것들이라고 부릅니다.”(1870년 5월 24일, 테오도르 드 방빌에게 보낸 편지)

프랑스의 젊은 천재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16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문단에 오르기 위해 당대의 거장 시인 방빌에게 자신의 습작 몇 편을 보냈다. 여기에 시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은 편지를 동봉했다. 이 편지에는 열정에 들뜬 랭보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학가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장은 작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작가들이 남긴 각종 메모와 편지에서 오히려 더욱 진솔한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읻다가 지난해 10월부터 펴내고 있는 문학인들의 서한집(書翰集) 시리즈 ‘상응’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나쓰메 소세키(1867∼1916)를 시작으로 다자이 오사무(1909∼1948), 랭보까지 현재 문학가 3명의 서한집이 출간됐다. 남수빈 읻다 편집자는 “번역자가 문인들의 편지를 모두 읽고 문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편지들을 선별했다”고 말했다.

랭보는 시인 폴 베를렌(1844∼1896)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와 나눈 편지에서는 랭보가 썼으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랑에 빠진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랭보는 연인과 다툰 후 “돌아와, 돌아와, 소중한 친구, 유일한 친구, 돌아와. 네게 맹세해, 착해질게”(1873년 7월 4일)라며 애걸하기도 하고, “내가 가서 너와 함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넌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그리고 그에 대해 너는 세세연년 회한을 느낄 거야”(1873년 7월 5일)라며 겁박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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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서한집을 보면 곳곳에서 돋보이는 그의 재치에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1900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당시 친구였던 시인 마사오카 시키(1867∼1902)에게 영국인들의 큰 키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사람 신장에 세금이라도 매겨야 조금 더 검소한 작은 동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맞은편에서 유독 키 작은 녀석이 온다. 잘됐군, 생각하며 스쳐 지나는데 나보다 5센티는 크다. 이번엔 얼굴색 묘한 웬 난쟁이가 다가오는가 싶었는데, 웬걸, 이 몸의 그림자가 거울에 비친 것이었다.”(1901년 4월 20일)

말년에 젊은 문인들에게 문학에 대한 조언을 건네는 편지에서는 진지함이 느껴진다. 그는 젊은 소설가이자 극작가였던 구메 마사오(1891∼1952)에게 “서두르면 안 됩니다. 머리를 너무 괴롭혀서도 안 됩니다.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끈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불꽃 앞에서는 짤막한 기억밖에 허락하지 않습니다”(1916년 8월 24일)라고 썼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문학을 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자이의 편지에는 한 인간이 10여 년에 걸쳐 죽어가는 과정이 몹시 정직하게 그려져 있어 쉬지 않고 읽기가 어렵기도 하다.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는 문우(文友)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300통에 이르는 편지를 남겼다. “살아 있는 동안은 비참해지고 싶지 않다”(1935년 10월 31일)던 다자이는 “자살한 뒤에 ‘귀띔이라도 해주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1936년 9월 19일)고 하더니 목숨을 끊기 두 해 전에는 “살아간다는 것은 원래 시시한 일”(1946년 8월 10일)이라고 썼다.

김현우 읻다 대표는 “작가와 사상가들이 남긴 편지는 작품의 밑그림을 좇는 단서가 되며 그들이 마주했던 시대와 정서를 드러낸다”고 밝혔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문인들#서한집시리즈#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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