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음악으로 우주의 신비를 찾아 나선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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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5일 월요일 맑음. 캡틴 마블러스.
#342 Chick Corea ‘Captain Marvel’(1973년)

칙 코리아의 생전 연주 모습. 동아일보DB
칙 코리아의 생전 연주 모습.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임희윤 기자
“몸은 이탈리아에서 왔지만 가슴은 스페인의 것입니다.”

지난해 5월 26일 오후, 수화기 너머로 칙 코리아가 말했다. 9일(현지 시간) 별세한 재즈 거장. 눈앞에는 없는 그의 얼굴을 대신해 나의 뇌리엔 한 장의 사진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투우사 복장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저 ‘My Spanish Heart’(1976년) 앨범 표지 말이다.

“저의 부모와 조부모는 모두 이탈리아 분이에요. 하지만 고교 때 라틴댄스 밴드에서 연주하며 라틴 문화에 푹 빠졌죠. 비밥의 심각함을 좋아하던 제 가슴 한편에서는 에디 팔미에리, 티토 푸엔테 같은 연주자들의 외향적 에너지가 꿈틀댄 거예요.”

칙 코리아의 ‘The Vigil’ 표지. 그는 스페인의 가슴 위로 우주인의 머리를 가졌으리라.
칙 코리아의 ‘The Vigil’ 표지. 그는 스페인의 가슴 위로 우주인의 머리를 가졌으리라.
코리아의 역할놀이는 저 투우사 코스프레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3년 역작 ‘The Vigil’의 표지(사진)에는 원정길에 오른 고단한 십자군 기사가 있다. 얼굴은 코리아다. 그가 이끈 밴드 ‘리턴 투 포에버’의 ‘Romantic Warrior’(1976년) 표지 속 가려진 얼굴의 주인이 실은 자신이었음을 공표하듯.

그렇다면 저 기사는 코리아의 심장을 지배한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기사일까. 아닐 것이다. 추측하건대 광대한 우주의 신비를 찾아 나선 사이버 우주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

‘The Vigil’ 앨범의 첫 곡 제목은 ‘Galaxy 32 Star 4’. 둘째와 셋째 곡은 ‘Planet Chia’와 ‘Portals to Forever’다. 그렇다. 코리아는 공상과학 마니아다. 그쪽 세계에 심취한 나머지 1960년대 말에는 사이언톨로지에 귀의했다.

‘Captain Marvel(캡틴 마블)’(QR코드) ‘Hymn of the 7th Galaxy(일곱 번째 은하의 성가)’ ‘Theme to the Mothership(모함의 테마)’…. 그가 발표한 곡 제목들을 보면 마블 코믹스나 저패니메이션의 마니아로 봐도 무리가 없을 지경이다.

“이르면 내년엔 한국 땅에서 만나자”는 그의 약속이 귀에 선하다. 정신이 산란해지는 그의 현란한 재즈 퓨전을 들어본다. ‘My Song’(키스 재럿)이나 ‘Are You Going with Me?’(팻 메시니) 같은 서정 발라드를 대표곡으로 남기지 않은, 어쩌면 그래서 “저의 나라, 코리아”에서 인기를 더 얻지 못한 그의 영원히 부유하는 듯한 야단법석 연주다. 인간계의 문지방을 넘어간 그는 아마 지금쯤 세 번째 은하계 언저리를 행진 중이리라. 음표로 유쾌한 수다를 떨면서. 굿바이, 우주의 기사.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음악#칙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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