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논문만 집착하는 한국… ‘귀에 쏙’ 설명해줄 석학 드물어

전채은 기자 입력 2021-01-22 03:00수정 2021-01-22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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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선 강연-연구 나눠… 지식전달의 중요성에도 비중
분야별 학자 육성 투트랙 전략
국내 대학, 논문비중 70%로 설정… 한국판 도킨스-하라리 출현 막아
국내 강연 시장이 커지면서 방송사들이 교양 강연 프로그램을 잇달아 편성하고, 수준 높은 강연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도 늘고 있다. 그러나 실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강연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국내 학계에서 자신의 연구 내용을 대중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연구자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에선 리처드 도킨스나 마이클 샌델, 유발 하라리 등의 석학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내놓는 파워라이터이자 대중 강연자로도 명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신간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를 출간한 하라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조망하는 국내 학회나 포럼들에 1순위로 초청되고 있다.

학계는 이런 차이가 지식시장 규모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출판·강연시장 규모가 큰 미국에선 학자들이 대중서와 강연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그만큼 크다는 것.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미국 출판시장 규모는 약 40조5000억 원으로, 우리나라(약 4조 원)의 10배가 넘는다. 일부 해외 석학의 국내 강연료는 수억 원대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A 교수는 “미국 석학들은 자신의 저서로 세계 각국에서 판매수익을 거두고 여기에 강연료까지 받는다”고 했다.

교수 양성 트랙의 차이도 영향이 크다. 미국 대학들은 교수 임용 시 연구전담과 강의전담으로 구분해 채용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전담 교수는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보다는 강의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반면 국내 대학들은 이렇게 이원화된 교수 양성 트랙이 없는 데다 교수 평가에서 논문 성과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학계에 따르면 국내 대규모 대학 중 상당수는 △SCI 혹은 SSCI급 저널에 발표한 논문 등재 건수 70% △수강생들로부터 받은 수업평가 20% △서적 발간 등 사회 공헌도 10% 정도의 비중으로 교수 평가를 한다. 아직 정년(테뉴어)을 보장받지 못한 소장학자들은 대중 학술서 발간이나 강연보다 논문 발표에 온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B 교수는 “일부 교수들은 논문 등재 건수에만 급급해 학문적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해외저널에까지 논문을 내고 있다”며 “이런 세태가 한국의 지식시장 발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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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대중들의 지식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교수 양성 트랙이나 평가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학자의 대중서 발간과 강연은 일종의 사회공헌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C 교수는 “교수마다 특성에 맞춰 연구와 강의 중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학문 발전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일정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일군 시니어 교수들이 대중 강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연구 논문#한국#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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