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길에 사람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故 김기찬 사진작가 [청계천 옆 사진관]

송은석 기자 입력 2021-01-13 17:41수정 2021-01-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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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등에 업힌 동생의 등엔 인형이 있습니다. 제가 김기찬 작가님의 사진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주말 쉬면서 무심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 오랜만에 반가운 분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골목 안 풍경’의 故 김기찬 사진작가입니다. 저를 사진으로 이끌어 준 사진작가 중 한 명입니다.

리어카에 탄 채 장농과 함께 세상을 구경중인 하얀 어린이의 모습이 돋보입니다.


김 작가는 지난 2005년 6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 간 서울의 중림동, 도화동, 공덕동 등 서울 골목길 풍경을 카메라에 담은 걸로 유명합니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이 김 작가의 유족으로부터 고인이 생전에 촬영한 사진, 육필 원고, 작가 노트 등 유품을 일괄 기증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필름은 자그마치 10만 여점! 이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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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하면 역시 고무줄 놀이 아니겠습니까. 고무줄 하나면 하루 종일 놀 수 있었죠!


그가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땐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게 두렵고 부끄러워 땅만 촬영했다고 합니다.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일화입니다. 초기에 역전 노점상과 행인들을 촬영하던 그는 서울역 뒤 중림동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김 작가는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떠올렸고, 잃었던 고향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골목길’은 작가의 평생의 테마가 됐습니다.

김 작가가 처음 골목길과 사랑에 빠졌을 때의 빛이 이랬을 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처음엔 간첩 신고를 할 정도로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츰 허름한 구멍가게 앞에 모여 동네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또한 골목 안 사람들이 됐습니다. 그의 사진들은 마치 그 골목 안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생생합니다. 비장하거나 화려함이 아닌 그 시대 서민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상이 포착돼 있습니다.

고 김기찬 사진작가의 생전 모습. 자세히 보면 오른쪽 아래와 왼쪽 뒷편에 아이들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미 ‘골목 안 사람들’이 됐다는 뜻이겠죠.


그가 좋아했던 서양 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유진 스미스의 느낌도 납니다. 좁은 골목길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원근감이 사진의 깊이를 더합니다. 고층 빌딩이 아닌 낮은 주택들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를 읽고 셔터를 눌렀을 작가의 모습도 상상됩니다.

앞에 밝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너머로 또 한 명의 어린이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골목길이기에 가능한 시선의 이동입니다.

사진 속 어르신들이 전혀 사진가를 의식하지 않은 채 평상시처럼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기에 더욱 생생합니다.

당시 유명 캐릭터였던 ‘순악질 여사’를 따라한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 있습니다. ‘나는 왜…’ 포기한 채 코스프레 중인 강아지는 덤이죠.


계속된 재개발로 이제 달동네들은 거의 사라지고 골목길은 아스팔트 도로가 됐습니다. 놀이터나 골목길에서 놀던 어린이들은 스마트 폰 속에서 전쟁놀이를 합니다. 어른들은 이웃과 층간 소음을 힘들어하며, 거리를 두고 살아갑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된 지금 더욱 김 작가 사진 속 서민들의 모습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사진기자였다면 누구나 탐낼만한 장면입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대야 속에서 어린이들이 대야 속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네요! 아이들의 표정 하나 하나가 살아 있습니다.

좁은 집을 나와 아이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방학 숙제였을까요? 차가 없었기에 가능한 풍경이네요.


서울역사박물관은 조만간 기증받은 김 작가의 필름을 디지털 화하고 색인한 뒤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계획입니다.

옛날엔 이렇게 골목길에서 바로 머리를 감겼죠. 원경부터 근경까지 인물들이 빈틈없이 배치돼 있습니다.


그의 사진들을 모아봤습니다. 여러분들도 잠시 김 작가와 함께하는 즐거운 골목길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송은석기자 silver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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