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힙합과 재즈로 보는 미국史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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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된 힙합/하닙 압두라킵 지음·박소현 옮김/376쪽·1만7800원·카라칼

늘어진 전선줄처럼 출렁대는 콘트라베이스 반복 악절, 그리고 ‘옛날 옛적 내 10대 시절/지위도 없고 삐삐도 없던…’으로 시작하는 멤버 ‘큐팁’의 랩. 긴장감 있는 열두 마디 인트로의 마지막 박자에서 스네어 드럼이 ‘딱!’ 내리꽂힌 순간, 힙합의 역사에 불꽃이 일었다.

미국 뉴욕 퀸스 출신의 힙합 그룹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명반 ‘The Low End Theory’(1991년)의 첫 곡 ‘Excursions’ 이야기다. 미국의 유명 가사 해석 사이트 ‘지니어스닷컴’은 이 그룹에 대한 소개를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가 힙합에 갖는 위상은 로큰롤로 치면 핑크 플로이드와 같다.’

책은 비밥과 하드밥 같은 재즈의 미학을 힙합에 도입해 1990년대 ‘얼터너티브(대안) 힙합’을 선구한 이 그룹의 이야기를 다뤘다. 시인 겸 비평가가 펜을 들었다. 비평, 에세이, 서간문이 혼재돼 있다. 디제잉, 샘플링, 래핑 같은 힙합의 기술적 부분, 인종차별의 역사, MTV와 BET, 더 소스, 제트, 에보니 같은 흑인 문화 매체 등 1980, 90년대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를 둘러싼 갖가지 맥락을 짚으면서도 간결하고 시적인 문체, 자전적 온기를 함께 가져간다. 4장, 8장, 10장은 저자가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멤버들에게 쓰는 서간문 형태로 만들었다. N.W.A.나 우탱클랜 같은 동시대 그룹들을 포함한 미국 동부와 서부의 문화사를 오가고 캐넌볼 애덜리나 게리 버튼 같은 재즈 명장의 손맛까지 느끼다 보면 책장이 스르르 넘어간다.

독특한 음악 그룹의 발전사와 디스코그래피를 훑는 동시에 미국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생활과 문화에 대해서도 두루 일별할 수 있는 책이다. 팬이자 평론가라는 양면성을 지닌 이가 쓸 수 있는 최대한 고상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지난해 전미도서상 후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재즈가 된 힙합#하닙 압두라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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