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 있는 그대로… “소소한 일상이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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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너의 인스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볼래?’

송송책방 제공
송송책방 제공
TV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당연한 듯 예기치 못한 사랑에 빠진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고, 예기치 못한 행운을 맞는다. 시청자의 눈과 귀를 붙들어두기 위해 그 모든 예기치 못한 일들은 매우 짤막한 시차를 두고 잇달아 벌어진다. 멍하니 보다 보면 이따금 ‘아… 저 사람, 정말 피곤하겠다’ 생각이 든다.

최근 출간된 마영신(스토리) 반지수(그림) 작가의 ‘너의 인스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볼래?’(송송책방)는 그런 드라마의 대척점에 자리한 만화책이다.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아보자’는 소망을 실천에 옮기고 생활해 나가는 이야기. 188쪽의 두툼한 하드커버 그래픽노블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 사건 하나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동갑내기 화가다. 밋밋한 외모에 밋밋한 성격. 연 수입까지 닮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그래서 함께 살기로 했다. 지금 우리 둘에게 필요한 건 각자 그림 그리는 작업실로 쓸 방과 같이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햇살이면 충분하다.”

신혼여행을 가지 않고 그 비용을 보탠다고 해도 예쁜 카페와 가게들이 촘촘히 늘어선 서울 주택가에 온전히 정착할 비용을 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낙천적인 예비부부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진한 추억을 쌓아보자”며 1년이든 2년이든 사정이 허락하는 동안만 예쁜 동네의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기로 결정한다.

“우리 같은 서민이 이렇게 월세가 비싼 데서 살면 사람들이 허세 속물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 그러든 말든, 긴 인생인데 잠깐이라도 예쁘고 우아한 삶을 경험해 보고 싶어.”

머뭇거림 없이 작은 방 두 개, 툇마루와 아담한 마당을 가진 집을 찾아 계약한 젊은 부부는 이사 첫날 마당에서 가슴에 하트 무늬를 가진 새하얀 길고양이를 만난다. 길모퉁이 허름한 슈퍼마켓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주고받고,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삶아 마주 앉아 나눠 먹고, 달빛을 고요히 흩뜨리는 모기향 연기를 맡으며 마루에 나란히 누워 잠든다.

남쪽바다 섬 집이 아닐 뿐 케이블TV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가 보여준 일상과 흡사하다. 먹을거리를 마련해 밥을 지어 함께 먹고 잠드는 타인의 하루하루를 편안한 기분으로 바라보게 되는 건, 얼핏 따분해 보이는 일상도 나름 분주하고 재미나다는 공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마주침이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전개되지 않는 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책에 담긴 부부의 사계절 마당집살이 이야기는 그런 안도감을 느끼게 해 준다.

여름 장마철 지붕 틈으로 빗방울이 듣는다. 쌓였던 낙엽이 눈에 묻혀 사라질 때쯤 젊은 부부는 불분명한 이유로 다투고 냉각기를 겪는다. 타인과 함께 살기를 토닥토닥 한 발씩 배워 가면서, 두 화가는 서로의 모습과 동네 사람들, 새하얀 길고양이의 일상을 차곡차곡 그림으로 기록한다.

밤늦게 들어왔다가 새벽에 출근하는 아빠를 보려고 잠옷 바람으로 골목을 달리는 소녀, 슈퍼 앞 평상에 잠시 홀로 앉아 들이켜는 맥주 한 캔을 낙으로 삼는 버스기사 아저씨, 사람들은 본체만체 길고양이에게만 인사를 건네는 까칠한 중학생…. 마당에서 연 부부의 그림 전시회가 이 조용한 만화책의 결말이다.

문득 내다본 버스 창밖 길가에 두 사람이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지갑을 주워준 여자와 당황한 듯 연신 고개를 숙이는 남자. 모든 일상은 드라마틱하다. 어딘가 숨은 새하얀 길고양이가 지켜봐 주는 드라마.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마영신#반지수#너의 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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