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조건 만남’이라는 논쟁적 소재…‘인간수업’의 흥행 원동력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6일 14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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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조건 만남’이라는 논쟁적 소재, 이름도 생소한 신인 주연, 웹드라마 한 편이 필모그래피의 전부인 신인 작가. 무엇 하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조합이 올 상반기 최대 화제작을 만들어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이다. 종영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넷플릭스 ‘오늘 한국의 톱10 콘텐츠’에 자리하며 자극적인 소재 덕을 본 반짝 인기가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문제작의 시작에는 제작사 ‘스튜디오329’ 윤신애 대표(50)가 있다. 진한새 작가가 보낸 2화 엔딩신(Scene)을 읽고 ‘이거 되겠다’며 제작을 결정했다는 윤 대표를 10일 서울 성동구 스튜디오329에서 만났다. 2화는 규리(박주현)가 조건 만남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같은 반 지수(김동희)에게 유도부 학생들 사진을 보여주며 남성 조건 만남으로 사업을 넓히자고 제안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고지능 저감성’의 두 고교생이 만나면서 판이 커지는 분기점이다.

윤 대표는 일찍이 진 작가의 재능을 알아봤다. 2002년 ‘김종학프로덕션’에서 송지나 작가의 드라마 ‘대망’을 담당했던 때였다. 송 작가의 집을 자주 찾던 윤 대표는 작가의 아들인 진 작가가 초등학생 때 그린 만화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시켜 보라’고 제안했다. 시간이 지나 진 작가가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시나리오를 보내 보라’고 연락했다. 진 작가는 인간수업 1화 대본을 보냈다.


“한새의 만화를 보고 ‘초등학생이 갈등을 이렇게 잘 표현하다니…’ 감탄했죠. 송 작가가 매일 밤 아들에게 갈등 상황을 던져주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 했다는군요. 그 경험 덕인지 묘사가 풍부한 그의 대본은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었어요.”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드는 대본의 힘은 확신했지만 이후부터는 모두 의심의 연속이었다.

청소년 조건 만남을 선정적으로 묘사했다가는 자칫 성범죄를 가볍게 소비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촬영감독은 여성인 엄혜정 감독으로 정했고, 촬영을 마친 뒤에도 배우의 옷차림 하나까지 신경 썼다.

“민희가 조건 만남에 나갈 때 입는 옷을 가장 고민했어요. 선정적으로 비치지 않길 바랐죠. ‘블랙리스트’에 오른 손님을 상대하는 장면에서는 여성이 실제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언제 가장 공포감을 느낄지 생각해보고, 민희가 쉬는 한숨 하나까지 계획해서 넣었어요.”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 ‘탑매니지먼트’에 이어 인간수업까지 연이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 드라마를 제작한 스튜디오329의 행보는 윤 대표가 회사를 차린 이유와 맞닿아 있다. 김종학프로덕션, ‘사과나무픽쳐스’ 대표, ‘뿌리깊은나무들’ 부사장으로 보낸 25년간 ‘해신’ ‘개와 늑대의 시간’ ‘육룡이 나르샤’ 등 많은 히트작을 냈다. 하지만 기존 문법과 다른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이 컸다. 그 갈증을 해소하려고 세운 것이 스튜디오329였다.


“OTT 플랫폼 관계자와 미팅하면서 ‘숏폼 콘텐츠’를 논의하는데 ‘부사장님이 하실 사이즈는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고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늦은 공룡이 돼버렸다는 의미였죠. 그 충격에 웹드라마, 단편영화 등 해본 적 없는 것들을 만들었어요.”

현재 업계가 주목하는 제작사가 된 스튜디오329의 차기작 목록도 다이내믹하다. 진 작가와 한 번 더 손잡고 30대 초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10부작 드라마를 내년 선보인다. 웹툰 원작인 ‘크라임 퍼즐’과 ‘빌린 몸’은 올해 내놓는다. 첩보액션 드라마 ‘아이리스’의 조규원 작가와 드라마를 찍기 위한 원작 소설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엔 지상파에 맞춰 폭넓으면서 (소재나 주제가) 두루뭉술한 아이템을 택해야 했지만 지금은 작가가 제일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요. 그에 맞는 플랫폼을 찾으면 되니까요. 대중적 아이템은 지상파로, 유니크한 아이템은 OTT 오리지널로 제작하는 투 트랙이 당연한 시대에요.”


스튜디오329 e메일에는 신인작가들의 ‘책(시나리오)’이 쏟아진다. 정제되진 않아도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이 드러나는 책에 눈길이 간다.

“OTT가 원하는 콘텐츠를 의식하지 않고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가 느껴지는 글을 찾아요. ‘너무 독특한가?’ 싶어 손에 쥐고만 있는 대본에 답을 줄 수 있는 제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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