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삶은 ‘살덩어리’에서부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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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빌 헤이스 지음·양병찬 옮김/384쪽·2만2000원·알마

책장을 넘기며 간간이 내 몸을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사랑과 공포, 경이로움을 느끼는 부위는 어디인가. 등을 지탱하는 수많은 근육들은 어떻게 자리하고 있나. 신체에 가장 뼈가 많다는 손은 어떻게 움직이나. 무심코 움직였던 몸의 구조를 차근차근 훑어본다.

복잡하고도 두려운 해부의 과정을 이토록 감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의학도의 필수 교재인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를 추적하며 시작한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유려한 그림에 매료된 저자는 미스터리에 휩싸인 ‘그레이’의 흔적을 찾아 나간다. 그러다 삽화를 그린 미지의 인물 ‘헨리 카터’의 일기를 발견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카터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해부학 수업에 직접 참관하면서, 책은 단순한 전기를 벗어나 몸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로 변신한다. 메스로 피부를 벗겨내고 드러나는 근육과 힘줄, 그리고 기계처럼 얽혀 있는 장기, 혈관과 뼈까지. 해부 과정의 섬세한 표현과 카터에 대한 추적, 여기에 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종횡무진하는 서술이 돋보인다. 글을 따라가며 무언가를 느끼고 이해하는 삶이란 결국 이 살덩어리들에서 시작한다는 걸 느낀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08년 발간됐다. 이를 우연히 접한 올리버 색스가 편지를 보냈고 얼마 후 색스의 파트너가 된 저자는 그의 죽음을 곁에서 지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해부학자#빌 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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