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 김명중 “내게 남을 인생사진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2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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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폴 매카트니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77)의 전속 사진작가 MJ KIM(본명 김명중·47)이 최근 첫 저서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북스톤·1만4000원)를 내놨다.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로 캐논갤러리에서 만난 김 작가는 “화려한 성공담보다는 한때 삶의 루저(loser·실패자)였던 내 실패담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부터 11년째 매카트니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그의 공연과 음악 제작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적도 없다. 대학입시 실패가 경력의 극적인 출발점이었다.

“대입 낙방 뒤 낙심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려했습니다. 그런데 유학원의 실수로 비자가 안 나왔죠. 비자 취득이 쉬운 영국으로 급히 행선지를 선회했습니다. 거기서 삶이 시작됐죠.”

런던의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사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게 질긴 인연의 첫 단추가 됐다. 그는 “처음엔 밤에 식당에서 주방보조와 서빙 일을 했지만 노는 걸 지독히 좋아했던 탓에 밤에 놀려고 낮에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그게 사진 일이었다”고 했다.

사진의 매력에 빠져 밤낮으로 독학하다 결국 현지의 작은 언론사 견습사원을 거쳐 게티이미지 유럽지사의 엔터테인먼트 수석 사진가까지 됐다. 이후 프리랜서로 스파이스걸스, 마이클 잭슨, 매카트니를 찍게 됐다.

이달 1일 시작해 다음달 4일까지 캐논갤러리에서 여는 출간 기념 사진전 ‘MJ Kim: Life & Photography’에는 매카트니, 스팅, 콜드플레이, 매슈 매커너히 등 다양한 팝스타와 배우를 찍은 그의 사진이 전시된다. 그는 시종 매카트니를 “폴 경”이라 불렀다.

“전시장 가운데에 가장 크게 걸어둔 폴 경의 사진은 제가 가장 아끼는 작품입니다. 폴 경과 처음 일대일로 초상 사진 작업을 하던 날 찍은 거예요. 그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저 전설적인 분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고 포즈를 주문하려니까 어찌나 떨리던지….”

김 작가는 며칠 전까지도 ‘폴 경’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이번 북미투어 마지막 무대인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 공연에서 비틀스의 전 동료, 드러머 링고 스타가 깜짝 출연했어요. 두 분 되게 친해요. 아직도 만나면 까불고 장난치기 바쁘죠. 한번 농담 대결을 시작하면 서로 한 마디도 안 져요.”

그가 얘기하는 매카트니는 농담 마니아다. 거장 앞에서 잔뜩 긴장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늘 먼저 농담을 건네는 따뜻한 할아버지.

김 작가의 왼쪽 팔뚝엔 몇 년 전 미국에서 새긴 문신이 선명하다. ‘And 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 to the love you make’. 매카트니가 공연 때마자 마지막 곡으로 부르는 비틀스의 ‘The End’의 가사 마지막 구절.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가사일 뿐 아니라 폴 경과 제게는 ‘아, 공연이 끝났다. 오늘 하루도 잘 마쳤다’는 각별한 뜻이 되거든요. 문신을 하고 처음 다시 만난 날, 폴 경이 보더니 농담을 하더군요. ‘자네, 무슨 중년의 위기라도 온 건가?’”
콜드플레이
콜드플레이

김 씨는 자기 삶에 세 가지 커다란 축복이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 축복은 대학입시에 떨어진 것. 두 번째 축복은 미국 비자가 안 나온 것. 세 번째 축복은 고국의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영국 대학을 중퇴한 것.

“당시에는 술독에 빠져 울고 힘들어했죠. 최대의 고난이라 생각했던 일들. 돌아보니 그것에서부터 다른 아름다운 일들이 출발하더군요.”

김 씨는 “모든 사람을 한 틀에 집어넣은 뒤 잘 못 하면 스스로 낙오자로 생각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문제다. 한국은 실패에 대한 관용도가 낮다”고 했다. 그는 책을 낸 이유에 대해서도 “젊은이들에게 ‘나 같은 루저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두드려보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책에 성공담보다 실패담을 많이 담기길 원한 이유”라고 했다. 그는 “나만큼 사진 찍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널렸을 것”이라면서 “실력은 물론이고 아티스트와 어우러질 수 있는 열정과 인성 같은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주창하는 ‘열심론’도 조금 별나다.

“미래에 원하는 것을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건 틀린 것 같아요. 일도 놀이도 모두 열심히 불태워야 해요. 재미와 행복도 운동처럼 해봐야 늘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돈과 명예를 얻으면 행복하겠지’ 하고 행복을 미뤄두면 막상 그 위치에 도달해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연습하지 않은 행복이 절로 따라오진 않으니까.

“행복을 꼭 자랑할 필요도 없어요. 인스타그램은 다 페이크예요. 소소한 즐거움을 스스로 찾아나갔으면 해요. 저 역시 일과시간에 모든 것을 불사른 뒤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펍에 가서 신나게 맥주를 마셨죠.”

영국과 미국에서 거주하던 김 작가는 2017년 초, 아내와 1남 1녀를 이끌고 함께 귀국했다.

“아이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자라 한국 문화를 잘 몰라요. 너무 늦기 전에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유학 갔을 때만 해도 한국은 설명이 필요한 나라였죠. 이제는 케이팝과 한류 열풍에 힘입어 멋지고 쿨한 나라가 됐잖아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에 대해 아이들이 더 잘 알았으면 좋겠어요.”
패션 사진 작품
패션 사진 작품

세계적 거장과 작업을 많이 했으니 이제 고국의 거장들과도 작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미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황치열, 2PM 등 인기 가수와 광고 촬영을 했지만 진짜 꿈은 더 있다.

“아무리 제가 폴 경, 푸 파이터스, 스팅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들었던 조용필 씨의 음악과는 비할 수 없어요. 피와 삶에 새겨진 아련함이랄까요. 최근에 이은미 씨와 작업하면서 느꼈어요. 전인권, 이문세, 이승환 같은 우리나라 전설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김 작가는 지금 케이팝이 전 세계적으로 뜨겁지만 아이돌에 쏠린 한국 음악시장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2016년 미국에서 열린 ‘데저트 트립 페스티벌’에 폴 경을 찍으려고 갔어요. 밥 딜런, 롤링 스톤즈, 닐 영, 더 후, 로저 워터스의 음악을 함께 즐기는 10대~70대의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에 감동 받았죠. 우리나라에서도 록, 트로트, 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균등하게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의 장엄한 스타디움을 누비던 김 작가는 요즘 서울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찍는 사진에 몰두하고 있다. 동호대교, 성수대교, 영동대교를 걸어서 건너며 한강 풍경을 촬영하곤 한다.

“작은 카메라 한 대에 28㎜와 50㎜ 렌즈만 갖고 다녀요. 거품이 빠진 소소한 사진이죠.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일생일대의 사건사고보다 소소한 일들이 모여 삶이 되잖아요. 이번 책을 쓰면서 사진에 더할 글을 쓰는 데도 취미가 붙었습니다.”

휴대전화 사진도 잘 찍느냐고 물었다. 그는 “집에서 자주 찍는데 아내에게 못 찍는다고 혼난다”며 웃었다.

“폴 경, 오바마 대통령 사진도 기억에 남지만 제게 남을 최고의 작품 사진은 결국 가족사진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뭔가를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를 쥐어짜 만든 것이 아니잖아요. 내 삶의 일부분을 자연스럽게 담았으니 그것이 바로 내 삶이고 흔적이겠죠. 60, 70대에 회고전을 연다면 가장 중요한 자리엔 아마 가족사진이 걸려있을 겁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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