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갈등의 현장, 시적 언어로 포착하다

  • 동아일보

국내서 첫 개인전 여는 벨기에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

《정부 시스템이 망가지기 직전의 혼란 속 멕시코. 메마른 황야에 선 한 남자가 토네이도 속으로 뛰어든다. 멕시코시티의 번화가에서는 권총을 들고 거리를 걸으며 시민의 반응을 살피다 경찰에 체포된다.

스릴러 영화 같은 이 작업들은 벨기에 출신 예술가 프란시스 알리스(59)의 퍼포먼스 작품이다. 그는 2000년대부터 세계를 매혹시키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뉴욕의 메이저 상업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는 물론이고 뉴욕 현대미술관, 영국 테이트모던 등 공공 미술관도 개인전을 열어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2011년 미국 뉴스위크는 그를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예술가 10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프란시스 알리스의 영상 작품인 ‘지브롤터 항해일지’의 한 장면.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인 지브롤터 해협에서 모로코와
 스페인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걷는다. 아이들은 신발로 만든 배 모형을 손에 들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프란시스 알리스의 영상 작품인 ‘지브롤터 항해일지’의 한 장면.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인 지브롤터 해협에서 모로코와 스페인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걷는다. 아이들은 신발로 만든 배 모형을 손에 들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알리스를 28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났다. 미리 본 전시에서 작품 ‘다리’(2006년)가 눈에 띄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쿠바인들이 미국 플로리다 남부 다리에서 발견된 사건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이민당국은 보트를 타고 몰래 국경을 넘는 이민자를 바다에서 발견하면 쫓아내고, 육지에서 발견하면 받아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다리를 육지로 볼 것인가를 두고 법적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 기사를 접한 알리스는 쿠바의 어선과 미국의 개인 보트를 연결해 다리를 놓아 보기로 했다. 그 과정과 결과를 영상,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두 담은 것이 이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 ‘지브롤터 항해일지’(2008년)는 북아프리카와 유럽 대륙 사이 전략적 요충지인 지브롤터 해협의 양쪽 해안에서 스페인과 모로코의 아이들이 작은 보트를 들고 서로를 향해 걷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이처럼 그는 단순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행위를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는 맥락에 놓고 다양한 의미를 이끌어낸다. 보트로 다리를 지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되묻는 식이다.

“현실의 모순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때, 아주 순진하고 바보 같은 요소를 넣으면 그 상황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흔들어 다른 해석을 열고자 한 것이죠.”

벨기에 출신 예술가 프란시스 알리스는 20대 후반 멕시코 대지진 직후 구호활동을 위해 방문한 멕시코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벨기에 출신 예술가 프란시스 알리스는 20대 후반 멕시코 대지진 직후 구호활동을 위해 방문한 멕시코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국가 간 경계와 이동에 관심을 갖는 작가인 만큼 한반도의 분단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프로젝트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DMZ에도 가봤습니다. 그 후 여러 자료를 읽고 있어요. 아주 큰 덩어리의 땅을 사이에 두고 서로 보지 못한 채 의심하는 상황이 매우 특이하고 흥미로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아시아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중요시하며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말했다. 그래서일까. 한국 작가 이불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올해 6월 우연히 영국 런던에서 이불 씨의 전시를 봤어요. 그녀의 언어는 거침이 없어 관객에게조차 아주 혹독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관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하나? 너무 친절한 거 아닌가?’ 하고 자문했죠.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 용기를 저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갈등의 현장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그는 예술이 세계를 바꿀 힘이 있다고 믿을까?

“저는 그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예술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 그것을 위해 도전하면서 새로운 해석과 다른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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