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차 맛이 예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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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룸-애프터눈 티 ‘茶 열풍’

티타임의 꽃 ‘애프터눈 티’ 세트는 1단 샌드위치, 2단 스콘 등 빵류, 3단 디저트로 구성된다. 최근 차를 찾는 고객이 늘면서 인당 2만∼3만 원대의 티 세트를 선보이는 카페가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쉐라톤서울디큐브시티호텔 제공
티타임의 꽃 ‘애프터눈 티’ 세트는 1단 샌드위치, 2단 스콘 등 빵류, 3단 디저트로 구성된다. 최근 차를 찾는 고객이 늘면서 인당 2만∼3만 원대의 티 세트를 선보이는 카페가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쉐라톤서울디큐브시티호텔 제공
한국인이 ‘차 맛’에 새롭게 눈뜨기 시작했다. 2016년 여름 시작한 밀크티 열풍이 ‘티 룸(Tea Room·차 전문점)’과 ‘애프터눈 티 문화’로 옮겨 붙고 있다. 이전까지 새로 개업하는 카페 10개 가운데 1개에 불과하던 차 전문점 비율이 최근 3, 4개로 늘었다. 차 관련 서적과 티 소믈리에 강좌도 2016년보다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업계에서는 요즘 차 문화를 선도하는 이들은 ‘밀덕(밀크티 덕후)’과 ‘40대 언니들’로 보고 있다. 직장인 김미정 씨(34)는 지난해 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돌던 사진 한 장에 영혼을 빼앗겼다. ‘말간’ 살구빛 액체가 든 아빠 스킨 같은 병엔 ‘보틀 밀크티(Bottle Milktea·병 밀크티)’란 라벨이 붙어 있었다.

“유제품을 좋아하는데 어떤 우유보다 구미가 강하게 당겼어요. 꽃 향도 나고 어릴 적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던 분유 우유 같기도 하고….”

이후 김 씨는 가루 밀크티, 액상 밀크티에 빠져들었고, 지난달부터 동네 티 룸에서 차 전반을 배우고 있다.

홍차에 우유와 꿀 등을 섞어 부드러운 풍미를 자랑하는 밀크티(왼쪽)와 최근 프리미엄 티룸 ‘오설록 1979’를 개점한 오설록의 티. 동아일보DB
홍차에 우유와 꿀 등을 섞어 부드러운 풍미를 자랑하는 밀크티(왼쪽)와 최근 프리미엄 티룸 ‘오설록 1979’를 개점한 오설록의 티. 동아일보DB
밀크티 열풍은 시각적 즐거움에서 출발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참기름 병’ ‘화장품 병’ ‘곰돌이 병’ 등으로 불리며 아기자기한 모양새가 여성들의 사랑을 차지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유행도 한몫했다.

최근엔 지난해에 비하면 대중적인 인기는 기세가 한풀 꺾이는 모양새. 하지만 좀 더 전문적이거나 깊게 차 전반에 빠져드는 ‘밀덕’이 많아졌다. 밀크티 전문점인 ‘소셜클럽’의 장재욱 대표(28)는 “밀크티로 시작해 차 세계에 매료된 이들이 적지 않다”며 “다만 프레르, 로네펠트 등 브랜드 티 룸과 개인이 운영하는 티 룸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주역인 40대 여성은 ‘혼족’ ‘욜로’ ‘배움’이란 트렌드에 반응하며 차 문화를 이끌고 있다. 이모 씨(43)는 요즘 한 달에 한 번 중세시대 귀부인으로 변신한다. 동대문에서 장만한 공단 이브닝드레스로 ‘드레스 업’한 뒤 친구들과 티 룸에서 정례 모임을 갖는다.

“보기만 해도 황홀한 3단 트레이에 담긴 디저트와 차, 그리고 수다를 즐겨요. 자신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해야 인생도 좋은 시간으로 메워지지 않을까요?”

이 씨 등 덕후들이 꼽는 차 문화의 매력은 정서적인 안정감이다. 이 씨는 “2000년대 초반 열정적으로 스타벅스에 가던 친구들과 이젠 ‘힙’한 티 룸에 가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한다”며 “따뜻하고 평화로운 카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같은 느낌을 즐길 수 있는 매개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차 문화는 다소 ‘어른’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일본 대만과 달리 산지가 늦게 발달한 점도 대중적인 확장을 더디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광복 뒤 급격한 경제성장의 열차를 탔던 한국은 ‘빨리빨리’ 타 먹는 믹스커피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천천히 음미하던 조선의 차 문화가 밀리는 형국이었다고 본다.

미국 차 브랜드인 ‘스티븐스미스티’의 장호식 대표도 “2016년 스타벅스가 출시한 티 브랜드 ‘티바나’가 대박을 친 후 차에 대한 인식이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며 “커피 일색이었던 한국 음료시장이 다변화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티 전문점 ‘카페샌드박’ 대표이자 티 소믈리에인 박혜정 씨는 “영국 차 문화는 오후 시간대 사교의 성격이 짙고 일본의 차 문화는 외양적인 격식을 중시 여기는 측면이 강하다”며 “한국은 엄마들이 자녀를 교육기관에 보낸 뒤 ‘오전 11시 티타임’을 갖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어떤 성격의 차 문화가 만들어질지 흥미롭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차#티 룸#애프터눈 티#차 문화#밀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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