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눈앞에 펼쳐지는 흑인 노예들의 참혹한 실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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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콜슨 화이트헤드 지음/황근하 옮김/348쪽·1만4000원·은행나무

19세기 미국 남부. 흑인 노예 소녀 코라는 목숨을 걸고 농장을 탈출한다. 턱밑까지 바짝 추격해 오는 노예 사냥꾼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다행히 북부로 향하는 지하철도와 흑인 노예를 돕는 이들 덕분에 코라는 자유를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저자는 흑인 노예들의 탈출을 도왔던 비밀조직 이름인 ‘지하철도’를 실제 지하철도로 상상해 작품을 썼다. 당시 지하철도의 활동으로 10만 명이 넘는 노예가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저자는 어릴 적 이 이야기를 듣고 진짜 땅속에 있는 철도로 상상했다고 한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 살짝 화가 났지만. 그리고 실제 철도였으면 어땠을지 질문을 던지며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가슴 졸이는 추격전과 노예제도의 참혹한 실상을 세밀화 그리듯 펼쳐낸 글은 책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을씨년스러운 마을에서 코라가 마주한 노예들의 훼손된 주검은 지옥이 있다면 이런 풍경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여러 책과 영화를 통해 알고 있지만, 흑인 노예들이 하루하루 견뎌야 했던 잔인한 일상을 다시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저자는 노예제도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제도가 피부색에 관계없이 인간을 얼마나 황폐화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짚어낸다. 백인 농장주는 노예들을 벌레처럼 쉽게 죽이고 팔다리를 잘라내며 인간성을 잃어간다. 흑인 노예는 관리하는 이와 명령을 따르는 이들 사이에 격렬한 증오가 피어오른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뺏으려 노예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습도 처연히 비춘다. 그럼에도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한 명 한 명의 의지가 모여 어떤 힘을 만들어내는지를 일깨운다.

이 책은 2017년 퓰리처상, 2016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미국에서 화제가 됐다. 탄탄한 작품성과 더불어 미국 내 흑백 갈등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며 얼마나 심각한지를 또 한 번 확인시켜 주는 현상이다. ‘문라이트’의 배리 젱킨스 감독은 이 책을 드라마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제는 ‘The Underground Railroad’.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콜슨 화이트헤드#흑인 노예#지하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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