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분도 “14년 만에 돌아온 종로서적, 이젠 영세서점의 희망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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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타워 지하에 문 연 서분도 대표
95년 역사-문화적 의미 이어받아 책과 사람이 만나는 명소로 부활
선대 회장측서도 응원 메시지

서분도 대표는 “일본처럼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지하철역 인기 서점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분도 대표는 “일본처럼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지하철역 인기 서점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981년 봄, 종로서적 20명 공채 사원모집에 500여 명이 몰렸다. 고졸 여사원 경쟁률은 100 대 1에 이르렀다. 서울 종로서적 주변에 양우당, 동화서적 등 당대 쟁쟁한 대형서점들이 이웃했고, 민음사를 비롯한 주요 출판사들도 빼곡히 둘렀다. 1990년대까지 종로는 그야말로 출판 산업의 메카였다.

 이 시대를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나 2002년 종로서적이 부도를 내고 문을 닫을 때 큰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1907년 ‘예수교서회’란 이름으로 문을 연 이래 95년간 출판계 정신적 지주로 자리해 온 종로서적. 이 종로서적이 이달 23일 종로구 종로타워 지하에 새로 문을 열었다. 14년 만의 부활이다.

 “기존 종로서적과 규모나 비중 면에서 같진 않겠지만, 그곳이 지녔던 역사·문화적 의미를 구현하는 데 의미를 두고 싶어요.” 서분도 대표(53)는 “이곳이 신(新)종로서적이지 왜 종로서적이냐”는 기자의 첫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현 대형서점들과 장서량을 비교할 순 없겠죠. 하지만 많은 책보다 많은 (책과 사람의) 만남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고 싶어요. 옛날 종로서적이 그랬듯이.” 선대(先代) 회장가에도 그러한 취지를 설명했고 “감사하고 잘 운영해 주시라”는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종로서적의 재건은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바라고 누군가는 해야 했던 일’이었다. 실제 폐업 직후부터 출판계 곳곳에서 재건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기 힘들었고, 더군다나 서 대표는 교보문고와 함께 대형서점 양대 산맥을 이루는 영풍문고에서 임원까지 지낸 이였다.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땐 당연히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주변 걱정요? 그거 두려웠으면 나오지도 않았어요.”

 서 대표는 어딘가 급히 가더니 기사가 가득 담긴 투명 파일을 들고 왔다.

 “올 7월 김언호 한길사 대표 등 출판계 원로들이 드디어 ‘종로서적 재창건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발족했단 소식을 들었어요. 이후 나오는 기사를 스크랩한 거예요.”

 곳곳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으며 읽은 흔적이 가득했다.

 “8월 지인으로부터 종로타워 지하 옛 반디앤루니스 자리를 의미 있게 쓰기 위한 아이디어를 구한단 e메일을 받고, 발기인 모임을 떠올렸습니다. 곧바로 모임에 연락해 이런 제안 메일이 왔으니 제가 그 자리에 종로서적을 되살려 보겠다고 손을 들었어요. 가족도 응원했고, 아들 둘은 지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어요.”

 서 대표의 부친인 고(故) 서인환 씨는 한국고전번역연구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의 초대 간부였다. 서 대표가 아무도 쉬이 손댈 수 없었던 부활 사업에 뛰어든 데엔 아버지를 이은 ‘출판인 2세’란 사명감도 있었다.

 하지만 사명감과 자부심만으론 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이때 곳곳에서 도움이 답지했다. 종로구가 종로서적 복원에 모든 행정적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고, 종로타워 건물주와 출판문화재단 등도 서점을 과거 만남의 메카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시설 협조를 검토 중이다. 직원 공고엔 열정을 가진 지원자들이 줄을 섰다. 대형서점에 근무하던 부부, 방송작가에 시인까지. “그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서 대표는 앞으로 종로서적이 크진 않지만 특색 있는 책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대형서점의 출발이 된 종로서적이 뒤이은 대형서점으로 인해 폐업한 건 역설적이죠. 영세 서점들이 위기를 겪는 지금, 이번엔 종로서적이 영세 서점들의 희망이 되는 역설을 구현하고 싶습니다.” 1408m²(약 426평), 옛 종로 골목처럼 구불구불 뻗은 서가를 지나며 서 대표의 눈이 빛났다.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종로서적#서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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