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네받은 명함 복판의 타이틀이다. 배경에는 선글라스 낀 석가모니불과 작가가 마주 앉아 사운드 믹싱기를 조작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최근 발칙한 제목의 그림에세이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오우아)을 펴낸 양경수 작가(32)를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서문을 대신한 ‘그림 배경음악’ 가사는 “워어어어얼 화아아아 수우우 모옥 금 퇼”을 달리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남몰래 열광하는 직장인 독자들을 위해 ‘싶어증입니다, 일하고싶어증’이라는 제목의 ‘출퇴근용 책표지’를 부록으로 붙였다. 하지만 양 씨는 “나는 직장인의 대변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늘 ‘회사 생활 해 봤는지’ 질문부터 받는다. 직장 경험 없다. 스무 살 때 2만 원 들고 집 나와 닥치는 대로 일해 생활비와 학비 벌며 살았다. 친구들 만났을 때 나 빼놓고 하는 직장 얘기 듣고 끼적이기 시작한 그림들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몇 컷을 보고 포털사이트와 출판사가 연락을 해 왔다.”

“가출한 뒤 모든 시간이 다 나 스스로 선택한,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취미나 기호를 찾는 게 아니라 진짜 나, 내가 할 일을 찾는 과정. 집을 나왔지만 불교미술의 경험을 부정하지 않고 밑천으로 삼았다. 종교를 갖자고 결심한 건 아니다. ‘나와 남을 존중하는 모든 이가 부처’라는 불교적 삶을 그림을 통해 추구하기로 한 거다.”
‘부모님과 다른 방식으로 그려 보자’는 생각으로 재해석해 그린 양 씨의 ‘팔상도’는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주목받아 현재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석가모니의 삶을 슈퍼히어로의 자기극복 성장기로 탈바꿈시킨 것. 명함 속 이미지는 그중 하나다. 그는 “욕먹을 줄 알았는데 스님들이 좋아해주셔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직장인 그림에세이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내놓았다.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직장인들이 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내 언어로 풀어놓은 그림일 뿐이다. 속내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나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읽고 반가워해준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에는 간혹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거나 보고 있으니 나라가 안 돌아간다’는 비판적 댓글도 달린다. 양 씨는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소통의 장이 확대되며 사회 전반의 사고가 진화하고 있다. ‘솔직히 토로하면 큰일 난다’는 공감이 ‘개인이 온전한 진심을 표현할 때 조직 구성원으로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바뀌고 있다고 믿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