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25>평범한 사람들과 일상의 기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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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루트 연주자’
카라바조의 ‘루트 연주자’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3∼1610)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술가로서 명성은 당대 예술의 중심지 로마에서 얻었지요. 화가의 재능을 알아본 후원자 델 몬테 추기경 공이 컸습니다. 후대 이론가들은 이 무렵 예술의 풍성함에 주목합니다. 이 시기 미술가는 예외적으로 음악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음악 애호가들이 그림을 주문했거든요. 3점이나 남아 있는 ‘루트 연주자’가 대표적입니다. 의뢰인 중 한 명은 추기경이었어요. 그림 속 미소년 연주자는 반주 악기인 루트를 조율 중입니다. 이제 곧 연주가 시작될 모양입니다. 호화로운 카펫이 깔린 테이블 위에 악보가 펼쳐져 있습니다. 발달된 인쇄술로 다량 제작되기 시작한 악보 묘사가 무척 사실적입니다. 사랑의 노래군요.

화가는 애초에 화면 왼쪽에 꽃과 과일을 배치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추기경은 더 많은 악기를 원했습니다. 음악 애호가이자 악기 수집가였던 의뢰인의 요청은 수용되었습니다. 정물이 악기로 수정된 것이지요. 루트를 비롯해 그림 속 바이올린, 리코더, 스피넷은 추기경의 애장품이자 실제 연주되던 악기들이었습니다. 주문자의 취향을 고려했다고 독자적 화풍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가의 미술은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와 짙은 연극성이 특징적입니다. 게다가 주제 해석은 다소 극단적이고, 상황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었어요. 무엇보다 화가는 이상적 권위가 아닌 현실적 감동을 중시했지요.

종교화를 그릴 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림 속 나약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성자는 평범하고, 기적의 장소는 허름한 삶의 현장입니다. ‘성자는 보통 사람이며, 기적은 일상에서 일어난다.’

화가의 신념이 담긴 혁신적 미술도 지속되었습니다. 추기경을 비롯한 여러 후원자의 한결같은 지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날까요. 팔순 연주자가 악기 헌정 프로젝트 계획을 듣고 내비친 반응이었답니다. 분신 같은 아코디언을 화재로 잃은 음악인은 우려했지만, 프로젝트 마무리는 훈훈했습니다. 550여 명이 동참해 새 악기 마련에 성공했다지요. 후원에 보답하는 공연 소식도 들려옵니다. 잠시 멈추었던 누군가의 삶이 계속 연주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평범한 이웃들의 따뜻함에서 남루한 일상을 다시 노래할 용기를 얻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미켈란젤로#메리시 다 카라바조#루트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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