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에 44년 만의 신작을 내는 1세대 저항 포크가수 방의경.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꽃잎 끝에 달려있는/작은 이슬방울들…’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외국곡)의 작사자이자 1세대 저항 포크 가수인 방의경(67)이 44년 만에 2집을 낸다. 앨범 발매와 공연을 위해 미국에서 귀국한 그를 2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내 음반을 좋아하는 팬들의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 2집을 내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72년 국내 여성 최초로 전곡을 쓴 포크 앨범 ‘내 노래 모음’을 내고 미국으로 떠난 전설의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한밤 같던 독재시대, 횃불 같은 노래를 뺏긴 비운의 가수다. 김민기, 한대수와 저항적 포크 전선을 이끌었고, ‘불나무’ ‘풀잎’ ‘겨울’ 같은 저항가요가 담긴 1집을 냈지만 발매 일주일 만에 정부에 전량 압수됐다. 그래서 그의 1집은 가장 희귀한 가요 앨범으로 꼽히며 장당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열아홉 살 때 암담한 세상을 보며 쓴 첫 곡이 ‘겨울’이에요.” 그는 서울 명동 YWCA회관의 청년문화 공간 ‘청개구리’의 창립멤버다. “슬픈 노래를 쓴 뒤 홀로 청개구리에 가면 (김)민기 씨가 약속이라도 한 듯 와 있었죠. 함께 ‘너는 어젯밤 어떤 노래를 썼냐. 들어보자’며 합주를 했는데 그 곡들이 퍼져 집회 현장에서 불리더군요.”
데뷔작이 정부에 의해 통제된 상황에 그는 큰 슬픔을 느꼈다. “제 음반이 나왔대서 설레는 맘으로 서울 광화문의 음반점에 달려갔는데 ‘일주일 전에 (공안당국이) 다 가져갔다’는 말만 들었어요. 그저 멍해졌죠.”
그는 굽히지 않았다. 당국의 감시를 피해 2집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 장충단의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처럼 해서 비밀통로로 녹음실에 들어가 새벽까지 녹음을 했죠.”
그렇게 녹음한 2집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다. 바로 민청학련 사건이 터진 것이다. 신문에 실린 사형수들의 사진을 보고 그는 ‘하양나비’ ‘마른풀’을 썼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2집 녹음테이프를 분실했다. “제 노래를 부르며 저항하다 고초를 겪는 분들을 보면서 더 이상 노래를 쓸 자신이 없어졌어요.” ‘사랑의 노래가 차오를 때까지 기타를 잡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1976년 미국으로 갔다. 전공(이화여대 장식미술과 졸업)을 살려 액세서리 사업으로 성공을 거뒀다.
그의 음악을 다시 깨운 건 인터넷 팬카페 ‘바람새친구’다. ‘저 산(남산)에만 들어가면 넋이 돼 나온다’는 내용을 담은 ‘검은 산’은 아쉽게도 가사와 곡조를 잊었지만 ‘마른풀’을 비롯한 몇 곡은 남았다. 2집에 새로 녹음해 실었다. 신작엔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보고 쓴 ‘Color’, 통일 염원을 담은 ‘소원’도 담겼다. 다음 달 11일 이화여대 김영의홀 콘서트 티켓이나 1, 2집 합본 음반(LP, CD)은 공연 현장 또는 제작 후원 사이트 유캔스타트(www.ucanstart.com)에서 구입할 수 있다.
“제가 노래한 건 저항만이 아닙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자는 희망이었어요. 거기에 사랑을 더하고 싶습니다. 이제 다시 노래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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