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은 외면했지만 관객의 갈채는 뜨거웠다

  • 동아일보

[무관의 화제작 ‘토니 에르트만’ & ‘패터슨’]마렌 아데 감독 ‘토니 에르트만’
장난꾸러기 아버지와 완벽한 딸… 티격태격 웃고 울리는 코미디
짐 자무시 감독 ‘패터슨’… 숨어서 詩 쓰는 버스기사의 일주일
예술이 주는 일상의 축복 그려내

‘토니 에르트만’(맨위쪽 사진)과 ‘패터슨’은 각각 올해 칸영화제의 경향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경쟁작 중 절반이 넘었고,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그중 세 편으로 ‘토니 에르트만’도 포함된다. 미국의 인터넷 공룡 아마존이 투자한 작품이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통틀어 다섯 편이나 초청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패터슨’도 그중 하나다. 칸국제영화제 제공
‘토니 에르트만’(맨위쪽 사진)과 ‘패터슨’은 각각 올해 칸영화제의 경향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경쟁작 중 절반이 넘었고,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그중 세 편으로 ‘토니 에르트만’도 포함된다. 미국의 인터넷 공룡 아마존이 투자한 작품이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통틀어 다섯 편이나 초청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패터슨’도 그중 하나다. 칸국제영화제 제공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작품과 상영관에서 박수를 받는 작품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

22일 끝난 올해 영화제는 유독 이 간극이 더 넓었던 것 같다. 전문가와 관객의 평가가 좋았던 두 작품 ‘토니 에르트만’과 ‘패터슨’은 수상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현지 상영관에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던 두 작품을 소개한다.

‘토니 에르트만’은 독일 출신 신예 마렌 아데 감독의 예측불허 코미디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위니프리드(페터 시모니셰크)는 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말도 안 되는 농담과 장난을 즐기는 실없는 남자다.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반대다. 대형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커리어 우먼.

여기까진 ‘성공했지만 내면이 공허한 딸, 허술하지만 인생을 즐기며 사는 아버지’라는 상투적인 구도다. 다만, 아버지의 장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짜 이와 가발을 하고 토니 에르트만이라는 가상 인물로 변장한 채 회사로 들이닥친 아버지 때문에 이네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 딸은 아버지를 냉정하게 돌려보내지만 아버지는 계속해서 딸의 주변을 배회하며 딸의 일상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는 수위의 장난과 함께.

이번이 세 번째 작품인 아데 감독은 독특한 호흡의 코미디로 영화를 상투성의 함정에서 건져낸다. 눈썹과 입꼬리의 움직임만으로도 인물의 복잡한 심경을 전하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 역시 일품이다. 162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이 살짝 겁이 날 수도 있다. 사실 초반 20∼30분은 좀 지루하다. 하지만 고비만 넘기면 영화는 낄낄대는 웃음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진한 눈물을 보장한다.

‘토니 에르트만’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 같다면 ‘패터슨’은 묵직한 직구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카메라는 미국 뉴저지 주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주일을 비춘다. 아내(골시프테 파라하니)와 행복하게 살던 그에게는 비밀 직업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시인이다. 열렬히 시를 사랑하지만 정작 작품을 발표할 생각은 없다.

여기까지 읽고 ‘음, 지루한 예술영화군’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는 언뜻 지루해 보이는 평범한 일상이 이 예민한 예술청년에게 얼마나 다채로운 색깔로 다가가는지, 그리고 일상이 예술에 의해 어떻게 축복받는지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스타워즈’에 출연해 할리우드의 신성으로 떠오른 애덤 드라이버 등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심지어 패터슨의 애완견 마빈 역을 맡은 불도그 넬리도 2001년부터 칸영화제 기간 중 수여되고 있는 ‘종려견상(Palm Dog Award)’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을 정도로 명연기를 펼친다.

짐 자무시 감독은 시와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 일상의 행간을 읽어내는 연출, 옴니버스식 구성, 동양적 선(禪)에 대한 애호 등 그동안 자신의 작품에서 선보인 조각들을 모아 반짝이는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시대나 공간이 짐작되지 않는 진공 상태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의 영화는 늘 배경을 초월한 채 존재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름다운 폭포 앞에서 작은 노트 안으로 빨려들 듯 등이 굽은 패터슨의 뒷모습과 그가 특유의 저음으로 읊는 시의 운율만큼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토니 에르트만’ ★★★★☆, ‘패터슨’ ★★★★ (별 5개 만점)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마렌 아데 감독#토니 에르트만#짐 자무시#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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