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원더풀, 베네통!” 유연함이 낳은 역동성

  • 동아일보

베네통 연구센터 파브리카를 가다

이탈리아 북부 폰차노베네토에 위치한 베네통 파브리카로 들어가는 입구 전경.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흰색 원기둥과 잔잔한 연못이 
어우러져 신전 같은 느낌을 준다.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이 곳에서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창의성을 닦고 있다. 마르코 자닌 제공
이탈리아 북부 폰차노베네토에 위치한 베네통 파브리카로 들어가는 입구 전경.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흰색 원기둥과 잔잔한 연못이 어우러져 신전 같은 느낌을 준다.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이 곳에서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창의성을 닦고 있다. 마르코 자닌 제공
“창조성은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다. 우리는 패션에 대해 유연하며 신선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다양한 문화의 혼합물로부터 나온다.”(베네통 설립자 루치아노 베네통)

이탈리아의 패션의류업체 베네통은 올해로 설립 52년째다. 설립 100년이 넘는 다른 이탈리아의 기업들과 비교하면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베네통 직원들은 자신들의 혈관에 ‘초록색(베네통의 대표 색깔) 피’가 흐른다고 말할 정도로 베네통이 가진 역사와 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다. 패션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 베네통을 직접 찾아갔다.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곳, 파브리카

파브리카 졸업생인 에리크 라벨로 씨의 작품 라나수트라. 두 인체상이 어우러져 새로운 색깔(화합을 상징)이 창조된다.
파브리카 졸업생인 에리크 라벨로 씨의 작품 라나수트라. 두 인체상이 어우러져 새로운 색깔(화합을 상징)이 창조된다.

“이런 형태의 건물을 여러 곳에서 본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파브리카의 홍보를 맡고 있는 안젤라 퀸타발레 씨(여)가 웃으며 물었다. 노출 콘크리트, 순수한 기하학적 표현 그리고 건축물 주변의 연못. 이 세 가지 공식을 들으니 어렴풋이 누군가가 떠올랐다.

“파브리카는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 씨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디자인한 작품입니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 트레비소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떨어진 폰차노베네토의 빌라 파스테가 마네라 거리에 있는 파브리카는 멀리로는 알프스의 산기슭, 근처는 포도밭과 푸른 잔디로 둘러싸여 있다. 파브리카는 베네통이 만든 자칭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다.

내부로 들어가자 건물 밖의 차분했던 풍경과는 달리 다양한 역동성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등 색색가지의 울 가닥을 온몸에 휘어감은 두 사람 조형물이 한데 엉켜 있는 ‘라나수트라’가 두드러졌다.

“이 작품은 2002년 파브리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부문을 다녔던 쿠바 출신의 에리크 라벨로 씨가 제작한 것으로 인도 카마수트라에 나온 체위를 묘사한 것입니다. 두 가지 다른 색깔의 울 가닥이 서로 만나서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 내는 것, 결국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없애주는 인류애를 이 작품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11년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선을 보인 후 세계 각국의 베네통 매장에 전시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즐긴다… 파격과 다양성으로 창의적 도전
이탈리아 북부 트레비소에 있는 베네통 매장 전경. 전시된 상품 뒤 캔버스 천이 설치돼 옷 색깔이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 마르코 자닌 제공
이탈리아 북부 트레비소에 있는 베네통 매장 전경. 전시된 상품 뒤 캔버스 천이 설치돼 옷 색깔이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 마르코 자닌 제공

파브리카는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던 설립자 루치아노 베네통이 1994년 17세기 건물이었던 빌라 파스테가를 개조해 문을 연 것으로 당시 안도가 이 재건축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곳에서는 시험도, 강의를 하는 교수도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밀라노 가구박람회나 국제 전시회에 전시할 프로젝트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토론한다. 여기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혹은 팀 동료와 함께 찾아야만 한다. 파브리카 곳곳에 걸려 있는 문구들(‘팀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해라. 그것이 당신의 프로젝트를 더 발전시켜줄 것이다’, ‘말은 적게 행동은 더 많이’ ‘열심히 일하고 즐겨라. 일 년은 정말 빨리 지나간다’)은 이곳에서 수학하고 있는 학생들의 다짐과 지향점을 보여준다.

파브리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만 25세 이하란 나이 제한만 있다. 국적과 인종 성별은 상관없다. 1994년 설립 이후 각국에서 온 약 600명이 이곳을 거쳤다. 현재 40여 명이 이곳에서 수학하고 있다. 본국 이탈리아 출신들이 113명으로 가장 많지만 미국(66명), 프랑스(26명), 아프가니스탄(1명), 르완다(1명) 출신 등 다양하다. 아시아에서는 일본(17명), 중국(10명), 한국(5명) 등지에서 파브리카를 졸업했다.

파브리카는 매년 지원자를 선발한다. 크게 디자인, 출판, 사회캠페인 3가지 분야에서 지원자를 받는다. 학생들은 보통 오전 9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오후 6시 정도에 일과를 마친다. 물론 자신의 일이 남았으면 더 해도 된다. 파브리카에서 늦게 떠날 경우 택시비도 나온다. 베네통은 이들의 체류비와, 교통비, 식사비, 미션 프로젝트 비용 등 전액을 지불한다. 이곳에서는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끼리의 토론과 워크숍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고와 행동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다.

파브리카는 베네통에게 직접적인 수익원이 되지는 않는다. 파브리카를 졸업하고 나서 베네통을 위해 일하지 않고 다른 회사에서 일해도 상관이 없다. 베네통에서는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파브리카를 22년 동안 운영한 것일까. 퀸타빌레 씨는 파브리카야말로 베네통이 설립 때부터 추구했던 방향이라고 설명한다.

“설립자인 루치아노 베네통은 다양성을 갖춘 젊은이들이 패션과 유행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브리카를 1994년부터 운영한 것이고 전 세계 젊은이 누구나 지원해 합격하면 무료로 최고의 시설 속에서 자신의 창의성을 맘껏 계발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동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사고를 넓힐 수 있습니다. 베네통은 젊은이들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되리라 굳게 믿고 있고 파브리카를 통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네통 정신의 결정체, 광고

베네통이 큰 이슈를 만들었던 광고. 백인 아기가 흑인 여성의 젖을 빠는 광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서로 키스를 하는 광고는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베네통이 큰 이슈를 만들었던 광고. 백인 아기가 흑인 여성의 젖을 빠는 광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서로 키스를 하는 광고는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파브리카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인 베네통 본사 벽 한쪽에는 베네통의 광고가 연도별로 걸려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키스 하는 광고(2011년), 티베트 승려와 중국 군인이 합장하고 서로 인사 하는 광고(2008년), 인종은 달라도 같은 심장을 갖고 있다는 광고(1996년), 흑인 여성의 젖을 빨고 있는 백인 아기(1989년), 신부와 수녀의 키스(1991년) 등은 광고를 넘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연상케 했다.

“베네통 광고는 1966년부터 시작됐지만 1980년대 중후반부터 새 광고가 나올 때마다 이슈가 되곤 했습니다.”

베네통 그룹의 커뮤니케이션부 베로니카 아르투소 씨(여)의 설명대로 베네통의 광고는 예술작품보다 더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베네통은 ‘종교’, ‘길거리’, ‘환경’, ‘난민’ 문제 등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광고로 드러냈다. 베네통 하면 특유의 밝고 강한 색감의 의류뿐 아니라 광고가 머릿속을 스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베네통은 광고 덕분에 소비자들에게 베네통의 옷에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철학, 생활방식이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베네통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 베로니카 씨는 “베네통은 마주하기 어렵고 껄끄러운 현실 문제에 대해 젊은이들이 눈을 뜨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베네통 광고는 어떻게 진행될까. 마르코 아이롤디 최고경영자(CEO)는 말한다.

“지금까지 베네통 광고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여줬다면 앞으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베네통이 이런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예정입니다.”

캔버스 천 위 베네통의 의류로 그리는 한 폭의 유화

파브리카와 광고 캠페인뿐 아니라 최근에는 매장도 베네통만의 색깔을 강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베네통은 본국 이탈리아에서만 2012∼2014년 동안 300여 개의 매장이 문을 닫는 등 침체기를 맞았다. 이때 베네통이 내린 결정은 소비자와 접점이 큰 매장을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온 캔버스(유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천)’ 매장은 용어 그대로 캔버스 천 위에 유화를 그리는 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매장에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도구는 유화용 물감이 아니라 바로 베네통의 의류들이다. 왜 유화란 콘셉트를 선택한 것일까. 베네통 그룹 커뮤니케이션부의 파올라 이노센테 씨(여)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화의 특징은 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수채화와는 달리 그림이 중후하고 사진처럼 사실적입니다.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이 유화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캔버스를 선택한 것은 베네통의 색깔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기 때문이죠.”

베네통 본사에서 자동차로 20분가량 떨어져 있는 베네통 트레비소 매장은 온 캔버스 콘셉트가 적용된 대표적인 곳. 매장에 걸려 있는 의류 뒤편에는 일반적인 벽 대신 컨버스 천이 길게 내려져 있어 의류의 색상을 감별하는 것이 훨씬 쉬었다. 온 캔버스 매장의 가장 큰 특징은 매장 안이 벽으로 구획이 나눠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벽의 역할을 하는 것도 캔버스 천이다. 캔버스 천이 의류 컬렉션을 나누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계절이 바뀔 때 새로운 컬렉션이 발매됐을 때마다 매장 배치를 달리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베네통은 2014년 말부터 780억 원을 투자해 유럽 및 아시아 매장을 ‘온 캔버스’ 형태로 바꾸고 있다. 현재까지 결과는 좋다. 밀라노 매장(27%), 스페인 바르셀로나 매장(30%)이 온 캔버스 형태로 바꾸고 난 뒤 대표적으로 매출이 크게 올랐고 전 세계적으로도 온 캔버스 형태의 매장들의 매출이 오르고 있다.

‘온 캔버스 매장’을 국내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전 세계 매장 개편 임무를 맡고 있는 마이클 뢰스테 국제사업 이사는 “한국 소비자들도 온 캔버스 매장을 곧 보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베네통에게 전 세계적으로 세 번째로 큰 시장인 한국은 올해부터 베네통이 직접 진출하게 되면서 매장의 변화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백화점 등과 협의 중입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이탈리아 베네통 매장과 같은 느낌의 매장을 빠른 시일 내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폰차노베네토=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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