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 생각하는 미술관]<16>두 손이 전하는 하나됨의 의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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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 ‘대성당’.
오귀스트 로댕, ‘대성당’.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은 유독 손에 주목한 조각가였습니다. 연인의 손, 자신의 손, 왼손, 커다란 손, 피아니스트의 손, 일련 번호 19번으로 알려진 손, 신의 손, 악마의 손 등. 손 조각 수천 점을 제작했다지요. 재료도 흙과 석고에서 브론즈와 대리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조각가가 손 조형물을 처음 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에는 손 조각을 만들어 고인을 기렸고, 중세에도 손 모양 유골함에 성인의 뼈를 보관했지요. 하지만 손처럼 인체의 일부가 조각 형식으로 수용된 것은 19세기 말이었습니다. 활발한 유적 발굴과 함께 고대 조각이 잇따라 발견된 때였지요.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던 인체 조각은 대부분 팔과 다리, 얼굴과 목이 사라진 상태였어요. 불완전한 조각에 시대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거든요.

‘돌 한 조각에도 돌 전체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고대 조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왔던 조각가는 이런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확신했습니다. 조각가에게 손은 깨진 돌 조각과 의미가 같았습니다. 손은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 정신 전체를 표현할 매개였지요. 감정과 기분, 취향과 소망이 제각각인 독립적 존재였어요. 완전한 생명, 존재의 총합이었습니다.

‘대성당’ 속 마주한 두 손이 종교적 건축물을 연상시킵니다. 하늘을 향한 가느다란 두 손이 구원의 갈망을 전합니다. 조각가는 대상의 본질 표현과 주제 전달의 효과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구원의 염원을 담은 조각도 극단적 표현 방식에 따라 제작했습니다. 투박한 마무리와 의도적 미완성이 주제에 관한 상상력을 극대화합니다. 조각은 한 사람의 양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두 개의 손 모두 오른쪽 손이거든요. 주인이 다른 손이군요. 그럼에도 애초의 조각 제목이 ‘언약의 궤’였을 만큼 본래부터 짝이었던 듯 조화로습니다. 구원을 향한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균형이겠지요.

조각 속 경건한 손짓이 삶의 내력이 다른 존재의 만남 같습니다. 얻어야 할 이득이 아닌 공유해야 할 가치에 바탕을 둔 관계를 보는 듯합니다. 어떤 가능성을 상상하며, 누구의 손을 잡고 조화와 균형의 관계를 이어갈지 생각해 볼 참입니다. 광장의 연대라 믿었던 과거의 만남이 밀실의 유착은 아니었는지 찬찬히 헤아려 본 다음의 일이겠지요.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오귀스트 로댕#조각가#대성당#언약의 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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