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아름답지만은 않은 유년의 성장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가랑비 속의 외침/위화 지음·최용만 옮김/415쪽·1만2000원/푸른숲

‘가랑비 속의 외침’은 어른이 된 주인공 쑨광린이 유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독특한 것은 시간 시점이 종횡무진이라는 점이다. 작가 위화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으로 꿰어진,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년의 감정과 이해가 있는 소설”이라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전개 방식은 기억의 속성을 닮았다.

쑨광린은 가난했다. 가난은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쑨광린을 비롯한 3형제로 이어지는 집안의 고유한 전통이었다. 형제 중 하나가 죽어 버리고 다른 형제가 동네의 그저 그런 어른으로 자라나는 사이, ‘나’ 쑨광린은 잠시 가난의 세계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남문 밖의 왕리창 부부에게 입양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쑨광린은 그들에게 가족적 애착을 느끼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몇 년 못 가 왕리창이 죽고 아내 리슈잉이 몸이 허약해 아이를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았기에 다시 피의 가족 품으로 돌아온다. 쑨광린이 10대가 되자 세계의 중심은 가족에서 친구로 옮겨 오고, 친구 쑤위와 정량과의 우정은 더욱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양자 생활로 외아들처럼 지냈던 쑨광린은 자신의 형제보다 쑤위, 쑤항 형제에게서 형제애를 배운다. 그러던 쑨광린은 동갑의 세계를 벗어나 동생뻘 루루를 만나면서 누군가를 챙기고 돌보고픈 마음에 사로잡힌다. 그 시절의 쑨광린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그렇게 커 간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것은 호르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성장이란 것이 수도 없는 첫경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라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설득하고 자신을 알아 간다. 사랑은 아니지만 동성 친구에게서 느끼는 묘한 감정, 이유도 모르는 채 끌리는 이성과 그로 인한 몸의 반응 등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읽는 이들은 위화가 설계한, 두서없어 보이는 쑨광린의 회상을 정신없이 쫓아가다가 자신의 과거를 소설과 읽게 될 것이다.

특히 쑨광린처럼 별로 아름답지 않고 지리멸렬한 성장기를 겪었다면 더욱 마음이 버거울 것 같다. 그래서 ‘가랑비 속의 외침’은 쑨광린의 기억을 관음하며 위화의 삶을 추측하는 소설이 아니다. 독자 스스로 제 기억을 마주하게 하고, 과거를 살풀이하게 한다. 애써 미화한 유년의 환상을 산산조각 내는 잔인한 소설이지만, 그 온도는 뜨겁다.

※지난 일주일 동안 573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이해미 서울 구로구
#가랑비 속의 외침#위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