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격동의 근현대사, 관류하는 6개의 키워드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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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이경구 등 지음/한림대 한림과학원 기획/264쪽·1만5000원·푸른역사
이용후생·철학·자강·공화·민주주의… 여기에 ‘아메리카’ 더해 개념탐구
대중 교양강좌 바탕으로 쉽게 풀어

일제강점기 정인보 등의 학자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학풍을 ‘조선학’으로 정의했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간행을 ‘조선 출판계의 금자탑’이라고 보도한 동아일보 1938년 10월 28일자 기사(위 사진). ‘민(民)’의 정치 참여를 주장한 독립협회 강연회를 듣기 위해 독립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 동아일보DB
일제강점기 정인보 등의 학자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학풍을 ‘조선학’으로 정의했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간행을 ‘조선 출판계의 금자탑’이라고 보도한 동아일보 1938년 10월 28일자 기사(위 사진). ‘민(民)’의 정치 참여를 주장한 독립협회 강연회를 듣기 위해 독립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 동아일보DB
사과라는 이름이 없다 해도 사과라는 과일은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개념 없이 민주주의 제도가 운영될 수 있을까? 비교적 안정적 질서를 구가하다가 19세기부터 모든 분야의 급변을 겪은 동아시아에서 각종 정치, 철학적 ‘개념’의 실체를 따지는 일은 중요하다.

책은 이용후생, 철학, 자강, 공화, 민주주의 등 6가지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맥락으로 사용돼 왔는지 추적한다. 역사학자 6명이 개념 하나씩을 맡아 썼다.

‘이용후생’ 하면 흔히 박지원 등 북학파 실학자를 떠올리지만 연원은 유교 경전인 서경(書經)이다. 신하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정치를 잘하고(선정·善政) 백성을 잘 기르면(양민·養民) 백성들의 도덕심이 높아지고(정덕·正德) 물화가 넉넉해지며(이용·利用) 삶이 윤택해진다(후생·厚生)”고 아뢴다. 서경에는 이용, 후생과 정덕이 같은 범주에 놓여 있다.

성리학은 정덕을 기본에 뒀지만 실학자들은 이용과 후생을 묶어 강조했다. 정조 때가 지나며 사용이 뜸했던 이용후생은 대내외 격변을 맞은 고종 때 다시 등장하고, 20세기 들어 ‘주체성 있는 근대’의 싹으로 다시 조명됐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민족적 근대’를 우리 역사에서 실증하려던 학자들의 활약에 힘입은 것. 저자는 “박지원이 살아 있다면 정덕 개념을 불러내 이용후생만을 강조하는 현대를 비판할 것 같다”고 말한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임시헌장 제1조를 계승한 것. 한일강제병합으로 대한제국이 사라진 지 불과 9년 지난 시점에 ‘대한제국 망명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생긴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3·1운동 당시 여러 전단에 등장하는 임시정부안도 모두 공화제를 전제로 했다.

학자들은 1907년 안창호 등이 결성한 신민회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독립협회까지만 해도 대체로 군주권 제한과 의회 설립을 골자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지향했다. 신민회는 공화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국민국가’와 ‘국민주권’을 주장했다. 이후 1911년 중국에서 청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 1917년 해외 독립운동 세력의 ‘대동단결선언’ 등을 거치며 공화제가 대세가 된다.

‘아메리카’가 여타 개념에 병렬돼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미국이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상상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너머 아스라이 존재하는 모호한 나라였던 미국이 광복을 맞은 뒤 조선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됐다는 것. 저자는 해방군 미군에 대한 환호, 군정의 실정에 대한 절망, 6·25전쟁의 혈맹, 공중 폭격으로 인한 공포, 물질문명에 대한 양면적 인식 등 미국이 한국인의 내면에 맺은 심상의 변화를 좇는다.

‘개념’이라는 말 때문에 얼핏 딱딱한 내용일 것 같지만 저자들이 대중 교양강좌를 바탕으로 쉽게 쓰겠다고 마음먹고 낸 책이어서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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