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짧지만 힘센 문장에 담아낸 ‘웃픈’ 일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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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이기호 지음/252쪽·1만2500원·마음산책

종목을 바꾸는 건 힘든 일이다. 운동선수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다. 장편과 단편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작가들에게 평균 원고지 13장 분량의 ‘짧은 소설’은 또 다른 종목이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이기호 씨(44)의 짧은 소설 40편의 모음집이다. 장·단편을 두루 써온 이 씨지만 짧은 소설은 처음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시조 형식을 빌려 짧은 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재치 있게 털어놨다. ‘짧은 글 우습다고 쉽사리 덤볐다가/편두통 위장장애 골고루 앓았다네/짧았던 사랑일수록 치열하게 다퉜거늘’

짧았던 사랑만큼 글쓰기와 치열하게 다툰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졸업 유예 1년을 신청한 화자가 대학 동기 준수를 따라 준수의 강원 평창의 고향집에 내려가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담았다. 화자처럼 취업을 하지 못한 준수는 아버지를 졸라 창업 자금을 타내려고 애쓴다. 화자의 역할은 준수의 얘기에 추임새 넣는 것. 대부분의 콩트처럼 이 씨의 짧은 소설 역시 웃음 짓는 반전으로 매듭짓지만, 때로는 씁쓸하고 때로는 짠하다.

‘동물원의 연인’에서 주인공 ‘그’는 생전 처음으로 데이트 약속을 잡고는 장소를 동물원으로 정한다. 부도 직전 동물원이란 소문이 돌았지만 ‘사람 없고 한적하다’는 이유 때문에 정했다. 그런데 이 동물원, 진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급기야 함께 간 주경 씨는 구걸에 가깝도록 애잔하게 울부짖은 반달가슴곰들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동물을 보고 즐기기 위해 온 동물원에서 오히려 동물에게 위협감을 느끼는 그의 모습은 본말이 전도된 사회 문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 편 한 편이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 순간들이다. 짧은 분량에 일러스트레이션도 더해져 읽기에 부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솜씨가 남다르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에선 취업준비생들의 고달픈 현실을, ‘내 남편의 이중생활’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멋진 모습 보여주기에 중독된 현대인을 보여준다. 짧은 글에 익숙해진 세대들에겐 특히나 읽는 맛이 있을 듯싶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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