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세계문화유산 화성에서 ‘사도’의 恨과 정조의 孝를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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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능을 수호하며 명복을 빌기 위해 일으킨 사찰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목판’(보물 제1754호)과 효행박물관이 있어 효찰대본산이라고도 부른다.
용주사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능을 수호하며 명복을 빌기 위해 일으킨 사찰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목판’(보물 제1754호)과 효행박물관이 있어 효찰대본산이라고도 부른다.

가을이 깊어간다. 아침저녁의 서늘한 바람과 한낮의 따뜻한 햇살이 어우러지는 요즘, 주말나들이에 딱 좋은 날씨다. 이제 휴가 시즌도, 연휴도 다 지나갔으니 특별히 시간을 만들어 멀리 떠나기는 어려운 게 현실. 우리 생활터전의 근처에 갈 만한 곳은 없을까. 수도권의 주민들에게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는 한마디가 있다. 경기도!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는 경기도는 또한 우리의 역사가 펼쳐진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말의 짧은 나들이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사 공부도 충실히 할 수 있다.

영화 ‘사도’가 엄청난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요즘, 이번 주말 나들이는 바로 그 역사적 아픔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는 경기도 화성시로 떠나 보자.

융릉, 건릉 왕의 깊은 효심이 맺혀 있는 곳

영화 ‘사도’는 조선시대 사도세자의 마지막 8일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9월 16일 개봉된 이후 2주일 만에 관객 수 약 500만 명을 기록했다. 추석연휴라는 영화특수와 함께 사극의 흥행 트렌드가 함께 작용하여 박스오피스에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관객들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심과 한을 가슴 뭉클하게 전달한다. 그 현장이 경기 화성시에 소재한 융릉이다. 역사 속,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지나버리는 기억이 아닌 오늘날 우리의 마음과 일상생활 속에서 역사의 한 장면을 실제로 더듬어 볼 수 있는 현장인 것이다.

화성시 융·건릉 바로 우리 곁의 역사

화성시(안녕동)에 소재한 융·건릉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와 그 아들 정조가 모셔져 있다. 조선 왕릉 중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가까운 곳에 안장된 능은 융릉과 건릉이 유일하다.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은 처음에 서울 휘경동 배봉산에 있었으나 정조 13년(1789년)에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융릉과 건릉 각각은 부부합장묘인데 융릉에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셨고, 건릉에는 정조와 효의왕후가 누워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능과 주변 시설의 형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개의 왕릉은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의 축을 이루지만 융릉의 경우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있다. 지극한 효심의 정조는 뒤주에 갇혀 돌아가신 아버지의 답답함을 풀어드리고자 능앞을 가리지 않고 트인 형태로 만들었다.

정조는 매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화성을 방문했다. 이 행차는 오늘날 ‘정조의 화성 능 행차’라는 이름으로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의 능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 왕릉 중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가까운 곳에 안장된 능은 융릉과 건릉이 유일하다. 융릉에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건릉에는 정조와 효의왕후가 누워 있다. 사진은 건릉 산책길 전경.
조선 왕릉 중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가까운 곳에 안장된 능은 융릉과 건릉이 유일하다. 융릉에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건릉에는 정조와 효의왕후가 누워 있다. 사진은 건릉 산책길 전경.


사도세자와 정조의 비석, 나란히


조선의 왕릉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환경도 잘 유지, 관리되고 있다. 융·건릉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고즈넉하게 뻗어 있는 소나무 숲길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은은한 솔향과 함께 평온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평소 어린이와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길을 따라 오른편으로 가면 융릉이 있고, 왼편에는 건릉이 자리하고 있다. 융릉과 건릉은 길이 3.3km의 둘레길로 이어져 있다. 경치를 구경하며 여유로운 산책이 가능하다.

다른 왕릉과 마찬가지로 융릉에도 정자각 오른쪽에 비각(碑閣)이 있다. 왕릉의 비각에는 한 개의 비석만이 있지만 융릉은 사도세자와 정조의 비석이 함께 있다. 사후에라도 왕으로 추존(追尊)될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서 아들 정조가 비석을 세울 장소를 하나 더 만들었기 때문이다. 1899년 고종은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했고, 그 비극적인 생을 위로하는 비석을 하나 더 모셨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효심을 찾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이기도 하다.

△여행정보: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무. 입장료 어른(만 25∼64세)1000원, hwaseong.cha.go.kr, 031-222-0142(융릉관리소), 경기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

용주사,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혼을 위로하는 절

융·건릉 가까이에 있는 용주사에서도 정조의 효심을 확인할 수 있다. 융·건릉에서 차량으로 10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이 절은 원래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되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願刹)로 삼았다.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아버지의 능을 수호하며 명복을 비는 사찰이 된 것이다. 불교가 당시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억압되었던 환경에서 국가적으로 관심을 쏟아 절을 세운 것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원통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뿐이던 정조는 아버지가 그립거나 전날 꿈자리가 사납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능을 찾아 손수 살폈고 그때마다 용주사에 들러 능을 지키고 보호하길 당부했다고 한다.

용주사를 효찰대본산(孝刹大本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정조가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하사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목판’(보물 제1754호)이 있는 것과 함께 경내 성보박물관이 아닌 효행박물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절은 과거 31본산의 하나였고 오늘날에는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개의 말사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대웅전의 후불탱화에서는 김홍도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정조의 명을 받은 김홍도는 25명의 화공을 지휘하여 후불탱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국보 제120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범종도 용주사 경내에 있다.

△여행정보: 관람 시간 오전 8시∼오후 6시. 입장료 어른 1500원, 어린이 700원. 문화관광해설사를 통해 무료 해설 가능, 경기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

‘정조 효 문화제’

융·건릉과 용주사는 비운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아들 정조의 사연과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화성시에서는 매년 ‘정조 효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축제에서는 정조대왕 능행차, 효행상 시상식, 융릉 제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올해는 10월 3, 4일 용주사 및 융·건릉 일대에서 열렸다.

이 가을, 사랑하는 아들딸과 함께 사도세자와 정조를 만나러 가보자.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주가 함께 융·건릉 숲길을 걸으며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효심을 충전하자.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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