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옛 서양인은 한반도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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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서양 고지도로 만나다/정인철 지음/332쪽·2만8000원·푸른길
반도〓악인의 땅, 제주〓괴물나라?

1672년 출판된 상송의 지도 ‘옛날의 아시아’. 제주도를 괴물 인간이 사는 땅이라는 뜻의 사티로룸 섬(Satyrorum I.)이라고 표기했고, 중국의 상하이 연안도 사티로룸 곶(Satyrorum prom.)이라고 표시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푸른길 제공
1672년 출판된 상송의 지도 ‘옛날의 아시아’. 제주도를 괴물 인간이 사는 땅이라는 뜻의 사티로룸 섬(Satyrorum I.)이라고 표기했고, 중국의 상하이 연안도 사티로룸 곶(Satyrorum prom.)이라고 표시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푸른길 제공
고(古)지도는 주로 동해·일본해 표기나 독도의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서 주목받을 때가 많다. 고지도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자료다. 근대적 조사와 측량술이 발달하기 이전 지도를 만들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을 자신들의 세계관에 의존해 표시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점의 서양 고지도에서 당시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가 어떻게 표시됐는지를 분석했다.

중세의 세계지도를 라틴어로 ‘마파문디(Mappa Mundi)’라고 한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성경이다. 중세인들은 에덴동산이 지구상에 실재한다고 보고 지도에도 표시했다. 지도 제작자들은 창세기의 ‘동방의 에덴’이라는 표현에 따라 인도 동쪽의 섬이나 인도 동쪽의 내륙에 지상낙원을 표시했다.

간혹 중국의 동쪽에 위치시킨 경우도 있다. 12세기 많이 보급됐던 이시도루스의 ‘어원론’에 수록된 지도에는 인도 동쪽과 중국 북쪽에 해당하는 위치에 ‘Paradisus(낙원)’가 쓰여 있다. 저자는 “굳이 이 장소를 지구상에서 찾는다면 한반도와 만주 지역”이라고 말한다.

반면 한반도로 보이는 지역을 성경에서 종말을 야기하는 악인들인 ‘곡과 마곡(Gog and Magog)’의 땅으로 표기한 지도도 있다. 서양인들은 곡과 마곡을 스키타이족, 투르크족, 몽골족 등 유럽인과 대립하는 민족으로 이해했는데 1457년 제작된 제노아 지도는 중국 북쪽에 위치한 반도에 곡과 마곡을 그렸다. 결국 서양 고지도에서 한반도 주변지역은 에덴동산에 근접한 곳이거나 종말의 민족이 사는 땅으로 표현된 셈이다.

제주도가 괴물 인간이 사는 곳으로 표시된 지도도 흥미롭다. ‘사티르(Satyr)’라는 괴물 인간은 로마 관료 플리니우스(23∼79)가 ‘박물지’에서 기술한 이래 많은 중세 지도에 등장했다.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지리학’에서 사티르가 사는 땅 ‘사티로룸(Satyrorum)’을 표시한 것에 영향을 받아 르네상스 이후에는 동아시아에 사티르를 그려 넣었다. 17세기 프랑스 지리학자 상송은 1672년 출판된 지도 ‘옛날의 아시아’에서 제주도를 사티로룸으로 표기했다.

저자는 “근대적 삼각측량이 시작된 이후에도 과학적 방식에 따라 그린 지역과 과거 전설에 의거한 지역이 혼재했다”며 “유럽인은 미지의 장소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도에 그린 뒤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사실 1561년 이전 서양 고지도에서 한반도는 구별해 낼 수 없거나 바다로 둘러싸인 섬으로 등장한다. 한반도를 반도로 그린 최초의 서양 고지도는 1561년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우 벨류가 그린 해도다. 한반도 남단에는 ‘PVTVRVS’라고 표기돼 있다. 저자는 이를 ‘끝’이라는 의미의 ‘PUNTUS’로 봤다. 한반도 아래에는 제주도가 16∼17세기 서양인들이 불렀던 ‘도적의 섬’과 ‘코레 섬(I. de core)’이라는 명칭으로 표시됐다.

부산대 지리교육과 교수로 한국지도학회장을 지낸 저자는 고지도를 동해·일본해 등 특정 지명 표기나 간도 등의 영유권 문제와 연결시키는 데 회의적이다. 저자는 “울릉도·독도를 조선과 일본의 영토로 각각 표기한 서양 고지도가 발견되는 것은 당시 정확한 지리적 정보를 갖지 못한 지도 제작자들이 어느 나라의 영토냐에 신경 쓰지 않고 임의로 경계선을 그었기 때문”이라며 “서양 고지도를 영토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반도 서양 고지도로 만나다#마파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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