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특별한 인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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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날 신부님의 주례사 첫말이 “오래 기다렸습니다. 멀리서 찾았습니다”로 시작되었다. 그 말에 하객들은 공감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신랑 신부 모두 마흔을 넘긴 데다가 신랑은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해 시카고에서, 신부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으니 정말 오래 기다려 멀리서 찾은 인연이었다.

집안 학벌 직업 외모,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두 사람이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겨 뒤늦게 다른 대륙에서 상대를 찾아냈다는 것이 알다가도 모를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성당 문을 나서 명동거리에 서면 서로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많고 많은 게 사람인데 그 ‘한 사람’을 만나기는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다.

살면 살수록 사람 사이의 인연이 신비함을 실감한다. 마치 미로에서 길을 찾듯이 수많은 골목을 돌고 돌아 그 모퉁이에서 딱 마주친 사람. 만약 그때 골목을 오른쪽으로 돌았다면, 내 발걸음이 조금 더 빠르거나 느렸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 그런 생각을 하면 하나하나의 인연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고 귀하다. 하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소쩍새 울고 천둥 치고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잠도 오지 않는 밤을 지내야 하는데 소중한 인연의 꽃을 피우기가 어찌 쉬울까.

나의 지인이 며느리를 얻은 사연도 특별하다. 아들이 과천 서울대공원 근처를 지나는 길이었다고 한다. 마침 오리 일가족이 차도를 건너고 있어 아들은 잠시 차를 멈추고 오리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 오리를 따라 차도를 건넌 새끼 오리가 차도와 인도의 경계 턱을 올라가지 못해 뒤뚱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옆 차로에 있던 승용차에서 한 여자가 내리더니 새끼 오리를 두 손으로 가만히 들어 인도에 올려주더라는 것.

지인의 아들이 그 여인을 다시 마주친 것은 며칠 후 회사 체육대회에서였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있다. 그날 당신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로 시작된 대화가 무르익어 데이트를 하게 되었고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첫 만남이 영화의 한 장면같이 아름답다.

성당에서 나와 명동을 걸으며 생각했다. 저 숱한 사람들 중 누가 꽃이 아니랴. 다만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를 뿐. 살아가며 맺는 인연들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듯이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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