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19>도시의 밤을 하얗게, 파리의 白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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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볼거리가 많은 도시를 밤새 자유롭게 누비며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많은 사람이 크리스마스이브나 12월 31일의 ‘올 나이트’를 손꼽아 기다린다. 도시의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짜릿함이 분명히 있는 듯하다.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1년에 하루 정도 우리를 제약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화려한 밤 공간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매년 10월 초에 열리는 파리의 ‘백야(La Nuit Blanche)’는 이런 도시인의 로망을 만족시켜 주는 예술축제다. 이 행사는 2002년 당시 시장이었던 베르트랑 들라노에가 과감하게 도입하여 모두에게 개방되는 파리의 대표적 도시축제로 자리 잡았다. 10월 첫째 주 토요일 밤을 끼고 ‘무박 2일’로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파리 도심의 밤을 밝히며 거리 곳곳에 흥미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거리와 광장, 공원과 관공서, 박물관 및 미술관은 말할 것 없고 성당과 극장 등 온 도시에서 조각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 현대미술의 향연이 펼쳐진다. 루브르 같은 유서 깊은 미술관도 새벽까지 문을 연다. 이에 맞춰 대중교통도 부분적으로 밤새 운행한다.

4년 전 직접 목격한 것 중에 파리 시청(Hotel de Ville) 건물 전면에 네온사인으로 빛을 낸 작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가 ‘차이를 사랑하라(Aimer les diff´erences)’라는 문구를 20개의 언어로 번역해 컬러 네온사인으로 설치한 작업이다(2010년·그림).

82세 노장 피스톨레토는 10여 년 전부터 ‘차이를 사랑하라’라는 메시지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그는 이런 작업을 통해 제각기 차이를 가진 국가들의 경계를 넘어 범국가적 연계를 꿈꾸고, 분열된 글로벌 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미술이 곧 메시지이고 슬로건이다.

경쾌한 멀티컬러 네온이 역사와 위엄을 갖춘 파리 시청 건물과 멋지게 어울렸다. 그런 예술적 안목을 갖춘 도시 파리가 한없이 부러웠다. 피스톨레토 등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들이 꾸며놓은 도시 곳곳을 직접 걸어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 년 중 단 하룻밤이건만, 이런 독특한 밤의 축제를 체험하고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비싼 여비도 마다하지 않고 파리로 몰려온다. 파리의 백야 축제는 문화적 홍보는 물론이고 상당한 경제 수익도 안겨준다.

파리의 백야를 서울로 가져올 수는 없을까. 홍익대 앞은 밤이면 밤마다 백야나 다름없다. 이곳에서 일 년에 딱 한 번 이렇듯 멋진 행사로 밤을 밝힐 수 있다면! ‘유흥’에서 ‘아트’로의 전환이 가져올 문화적 가치는 기대 이상일 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 한류를 위해 참고할 좋은 사례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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