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철학교수 출신 스파이, 철학의 미로 탐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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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를 사랑한 스파이/이종관 지음/404쪽·1만7500원·새물결

작자 미상 ‘플라톤의 동굴’. 저자는 플라톤부터 시작되는 서구 철학사를 정리했다. 새물결 제공
작자 미상 ‘플라톤의 동굴’. 저자는 플라톤부터 시작되는 서구 철학사를 정리했다. 새물결 제공
독특한 형식이다. 책의 서두는 총알 상태를 점검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대학 연구실에 잠입하려는 계획을 구상한다. 곧이어 차량 추격에다 총격전이 이어진다. 소설의 주인공은 국정원에 소속된 첩보원이다. 그런데 전직은 지방 사립대 철학과의 대우 전임교수다.

애매한 직위에 우울해하던 주인공은 사표를 내고 국정원에 취직했다. 맡은 임무는 세계 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신에너지 이론을 고안한 독일인에게 접근해 이론의 전모를 파악해 오라는 것이다. 그 독일인이 철학과 교수여서 철학을 전공한 주인공이 임무를 맡게 됐다.

내용은 황당한 듯 보이지만 읽다 보면 첩보소설의 옷을 입힌 철학안내서다. 체코 프라하로, 이탈리아 시에나로 몸을 옮길 때마다 장소에 대한 사유가 펼쳐진다. ‘프라하라는 말은 체코어로 ‘문턱’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하이데거의 말대로 문턱은 두 영역 사이를 가르며 동시에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프라하라는 이름에 풍경의 근원적 두 차원 즉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장소성이 암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첩보 과정에서 기업의 최고책임자들을 만난 주인공은 논쟁을 벌이는데, 이 내용은 하이데거의 현대기술 비판이다. 연인과의 사랑도 동반되는데, 단순히 흥미를 북돋우는 역할이 아니다. 메를로퐁티와 후설 등 철학자들의 ‘몸의 철학’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로의 여정에 이르면 자본과 경쟁의 지옥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던진다. 소설로서 매끄럽진 않지만 시도가 흥미롭다. 현실의 삶과 추상적 철학 관념을 연결하려 한 저자의 노력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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