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강소출판사의 약진, 베스트셀러 법칙을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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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회의 집계 최근 종합순위 10위권에 5권이나 올라

출판시장과 독자가 선호하는 저자군의 변화로 소규모 출판사들이 펴낸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선전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출판시장과 독자가 선호하는 저자군의 변화로 소규모 출판사들이 펴낸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선전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 “성공 법칙이 바뀌었나?” 국내 매출 5위권의 A출판사 직원들은 최근 워크숍을 가졌다. 이례적으로 소형 출판사들의 기획 방식과 독자 선호도를 연구하는 자리였다. 실제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국내 출판계를 주도해온 대형 출판사보다 생긴 지 2, 3년밖에 안 된 중소 출판사가 선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

○ 작은 고추가 맵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전국 대형서점 8곳의 판매를 합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3월 둘째, 셋째 주)를 보면 중소 출판사의 약진이 눈에 띈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 중인 ‘미움받을 용기’를 낸 인플루엔셜은 지난해부터 책을 내기 시작한 회사로 그 뿌리는 강연 컨설팅업체였다. 현재까지 출간한 책이 5종에 불과하다. 대표 문태진 씨도 비출판인 출신.

베스트셀러 3위 ‘하버드 새벽 4시 반’의 라이스메이커 역시 3년밖에 안 된 1인 출판사다. 베스트셀러 7∼13위를 오간 ‘비밀의 정원’을 낸 클 출판사도 설립 3년 차, 직원 수 3명에 불과하다. 10위권 내에 2권의 책(‘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을 올린 한빛비즈도 직원 9명의 소규모 출판사다.

이들 출판사는 일하는 방식도 기존 출판사와 다르다. ‘미움받을 용기’는 책 내용의 5분의 1이 담긴 ‘샘플북’을 만들어 서울 명동에서 무료로 나눠주며 책을 알렸다. 인플루엔셜 김혜연 편집장은 “대형 출판사들이 온라인 광고에 집중하던데 우리는 사람이 가는 곳에 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클 출판사는 ‘국내에는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며 대형 출판사가 고사한 컬러링북을 도입해 43만 부의 판매량을 올렸다.

출판사의 브랜드 파워나 자본력이 중시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출판계의 중론이다. 지난 10여 년간은 ‘선(先)인세 경쟁’ 시대였다. ‘유명 작가 섭외→높은 선인세→대규모 마케팅→베스트셀러’로 이어지는 대형 출판사의 성공 방식이 통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줄고 선인세 경쟁이 과도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래서 요즘은 신인이 아니라 대형 작가가 리스크가 크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 “출판사, 저자 명성보다 내게 꼭 맞는 책 선호”

출판사와 저자를 선택하는 독자들의 성향도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원 박재훈 씨(40)는 “과거엔 민음사, 창비 등 출판사 이름값을 중시했다”며 “요즘은 작은 출판사도 책을 잘 만드는 것 같아 출판사는 책을 고르는 데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작은 출판사들은 발 빠른 기획력으로 위험성을 줄이며 독자 맞춤형 책을 출간하고 있다. 직원 3명의 스윙밴드 출판사는 ‘더미북(Dummy Book·모형책)’을 먼저 만든다. 저자를 섭외한 뒤 원고가 오면 책 제작이 시작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기획 단계부터 판형, 원고량, 디자인을 작가와 정해 제작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또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소신껏 살라는 ‘미움받을 용기’, 인문학 열풍 스트레스 속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을 포함해 고양이와 동거하는 법, 작은 동네 여행기 등 기존 출판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소재나 저자를 통해 독자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사 고세규 이사는 “요즘 독자는 내 마음을 모를 것 같은 유명 저자보다는 친구, 이웃처럼 공감과 위로를 줄 것 같은, 즉 자신과 비슷한 저자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출판 마케팅’이란 책을 낸 김류미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팟캐스트에서 활동하는 저자는 이미 두꺼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데 대형 출판사는 속칭 ‘듣보잡’으로 여겨 섭외하지 않는다”며 “반면 작은 출판사들은 이들과 계약해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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