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의 초대는 정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심에선 패션으로 유혹한다. 디자이너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옷에 담아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아무리 남성적인 패션 스타일이나 아무렇게나 입은 듯한 시크한 ‘놈 코어’ 스타일이 대세라도 수채화 같은 플라워 패션을 그냥 지나치긴 어렵다. 하다못해 미니멀리스트 ‘셀린느’마저 브랜드 사상 처음으로 올봄 런웨이에 꽃을 올려놓았다.
올해 봄여름 디자이너들은 ‘꽃무늬 패션’의 선택지를 더 넓혀 줬다. 한없이 여성스러움이 묻어난 옷도 있고, 포스트 모던 디자인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꽃도 있다. 최근 1970년대 스타일이 메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복고풍 꽃무늬 패션도 올봄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
(왼쪽부터)돌체 앤 가바나, 버버리, 셀린느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에서 온 초대
디자이너들은 올봄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찾은 봄을 옷에 담기 위해서다. 제각각 자연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으면서 색다른 꽃무늬를 창조해 냈다.
‘발렌티노’의 듀오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이탈리아에서 18세기에 유행한 ‘그랑 투어’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랑 투어란 당시 귀족 자제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지나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세련된 예법의 도시 파리로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다.
올봄 발렌티노의 꽃 패턴도 귀족 청년이 17∼18세기 이탈리아를 찾아 감탄했을 법한 바로크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성당을 장식하는 조각품처럼 생생하되, 다양한 원색을 활용해 오히려 현대적으로 보이는 효과가 난다. 1960∼70년대 복고 스타일을 떠올리기도 한다. 뭔가 낭만적이면서 전통적이고, 그러면서 현대적인 꽃의 향연이 느껴진다.
‘돌체 앤 가바나’의 디자이너들은 스페인에서 봄의 초대장을 보냈다. 브랜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이 한때 스페인의 영토였다는 점에 착안해 정열적인 붉은색 꽃으로 드레스를 수놓은 것. 블랙 망사 스커트와 사틴 드레스는 붉은색으로 꽃을 수놓았다. 검은색 물방울무늬 속에 붉은 카네이션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흰색 드레스도 인상적이다.
‘버버리’는 고향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았다. 영국의 정원을 노니는 꽃과 곤충, 또 1940년대 영문 빈티지 책의 표지에서 착안해 독특한 컬렉션이 탄생했다. 정원 속 꽃뿐 아니라 옛 책에서 본 듯한 글씨체로 된 ‘FLOWER(꽃)’이란 문구를 담은 옷도 있다.
(왼쪽부터)마르니,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오리엔탈, 로맨틱 플라워의 환영
꽃을 소재로 이렇게나 다양한 프린트가 가능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셀린느’의 수석디자이너 피비 파일로는 빈티지와 레트로 감성을 담은 다섯 가지 프린트를 선보였다. 블랙과 화이트 계열의 깔끔하고 심플한 옷으로 현대 여성의 ‘롤 모델’을 바꾸게 했던 파일로의 꽃무늬라니……. 당신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컬렉션이다. 검정색과 녹색의 나뭇잎, 야생 꽃, 데이지, 멀티 컬러 꽃, 해바라기 등이 그것이다.
‘마르니’는 크고 대담한 꽃의 향연을 펼쳤다. 오리엔탈풍이다. 만개한 꽃처럼 크고 풍성한 꽃은 드레스, 재킷, 상의와 스커트에 자유롭고 비대칭적으로 그려져 자연스럽다. 붉은색, 오렌지, 녹색, 푸른색 등 다양한 컬러 팔레트는 컬렉션을 한층 더 강렬하게 보이게 한다.
꽃무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감성은 바로 ‘로맨틱’이다.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잔잔한 꽃잎들이 모여 있는 로맨틱한 꽃밭을 보여 준다. 바람에 흩날릴 듯한 작은 꽃잎들이 우아해 보인다. 흰색 꽃잎들이 가득 수놓아진 브라운 가죽 재킷은 가죽의 묵직함을 없애 주면서 동시에 한 없이 여성스럽고 화사함을 전달해 준다. 꽃을 자유자재로 그리는 재주를 지닌 ‘에르뎀’은 올해에도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플라워 컬렉션을 선보였다. 원색을 지양하고 수채 물감을 들고 그린 듯한 프린트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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