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광인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의 초대를 받아 ‘스카이 재즈: 국왕 헌정 공연’ 무대에 오른 팝재즈 듀오 윈터플레이의 혜원(왼쪽)과 이주한. 라우드피그 제공
20일 오후(현지 시간) 태국 방콕의 낮 최고기온은 32도였다. 시내 중심부 클롱 토에이 구(區)에 있는 시리낏 왕비 국립 컨벤션센터에서 태국 왕실이 주최한 ‘스카이 재즈: 국왕 헌정 공연’이 열렸다. 근처 인공호수에 특설된 50m 길이의 초대형 수상무대 뒤쪽 배경을 특급호텔과 금융사,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으로 구성한 방콕의 새 마천루가 병풍처럼 호위했다.
1946년부터 재위한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87)의 생일(12월 5일) 즈음이면 왕실은 매년 세계적인 재즈 연주자를 초청한다. 색소폰 연주와 작곡을 직접 하는 재즈광인 푸미폰 국왕을 위해서다. 올해 출연진은 절정이었다. 거장 카운트 베이시가 1935년 창설한 빅밴드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래리 칼턴, 존 피자렐리, 다이앤 슈어 같은 세계적 거물이 이날 4시간 동안 이어 연주했다. 초빙된 여섯 팀 중 하나가 한국 팝재즈 듀오 윈터플레이(이주한, 혜원)다. 이 행사에 태국 외 아시아 국가의 연주자가 참여한 것은 올해 윈터플레이가 처음이다. 오후 4시, 첫 순서로 등장한 윈터플레이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냉정한 사람이지만’ 하는 한국어 가사(‘못 잊어’)를 방콕 시내에 울리며 30분간 공연했다.
윈터플레이는 2008년 국내 세탁기 광고에 쓰여 유명해진 ‘해피 버블’을 작곡하고 연주한 그룹이다. 지난해 3집 ‘투 페이뷸러스 풀스’가 홍콩 중국 대만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수록 곡 ‘셰이크 잇 업 앤드 다운’은 홍콩 민영라디오의 해외음악 차트에서 브루노 마스, 비욘세, 소녀시대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푸미폰 국왕은 젊은 시절 재즈의 매력에 빠진 뒤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기타를 배웠고 베니 굿맨, 라이어넬 햄프턴, 스탠 게츠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왕실로 초대해 협연했다. 그가 작곡한 ‘촛불 블루스’ ‘해질녘의 사랑’ ‘비가 내리네’는 칼턴을 비롯한 서구 재즈 음악가들이 자신의 음반에 수록했다.
왕실 초청을 받은 1만 명이 공연을 지켜봤다. 국왕은 최근 대장염이 악화돼 시내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이날 행사엔 참석하지 못했다. 푸미폰 국왕의 작품으로 앨범 하나를 통째로 녹음한 적도 있는 칼턴은 이날 태국 왕실 문장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연주했다. 15명이 넘는 연주자가 코끼리 떼처럼 힘찬 관악을 뿜어낸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는 대표 곡 ‘에이프릴 인 패리스’ 외에 푸미폰 국왕의 곡 ‘블루 데이’도 연주했다. 슈어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폭발적인 스캣을 선보인 뒤 “축복을 빕니다. 폐하!” 하고 외치며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생생하고 박진감 넘친 이날 콘서트 음향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콘서트를 기획한 브라셋 티라마노 ‘93.5 FM 라디오’ 총괄 음악 감독은 “태국에서는 2004년 영화 ‘시월애’ 신드롬 이후 한류의 중심축이 드라마와 케이팝으로 이동했다”며 “윈터플레이의 음악을 접하고 ‘다음은 케이재즈(K-Jazz)가 아닌가’ 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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